죽음의 스펙터클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범죄, 자살, 광기

원제 Heroes (Mass Murder and Suicide)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 | 옮김 송섬별

출판사 반비 | 발행일 2016년 8월 19일 | ISBN 978-89-8371-799-3 [절판]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6x208 · 300쪽 | 가격 18,000원

책소개

‘묻지마 살인’의 마음을 묻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실천적 지성이 파헤친 불안정한 세대의 정신병리학

비포의 이 여행기는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섬뜩한 거울이다. 이 책에는 네오휴먼의 디스토피아가 된 2010년대 한국의 풍경이 기록되어 있다. “지구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자유와 특이성을 빼앗는 기호자본의 극단적 착취와 신경전체주의의 연전연승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암울한 변화의 최전선이 다름 아닌 한국이다. ―임태훈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융복합대학 기초학부 교수

오늘의 비극은 절망과 희망의 변증법이 상연되지 못한 채 메마르고 지루한 고통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어떤 바깥과 틈새도 허락지 않은 채 자본주의는 절대자가 되었고, 비포는 그것을 부정하는 방식이 해방도, 탈출도, 거부도 아닌 자살과 테러가 되었다고 어둡게 진단한다. 그러나 이를 섣부른 허무주의라고 부르지 말자. 비관의 심연에서 그는 우리가 발명해야 할 주관성의 모델을 찾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서동진 | 사회학자,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IS 스펙터클부터 강남역 살인사건까지
‘묻지마 범죄’의 광기를 통해 들여다본 우리 사회의 얼굴

이른바 ‘묻지마 범죄’는 최근 5년간 꾸준히 50건 이상 발생하며 많은 이들이 언제 어디서든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지난 5월 강남역에서 한 남성이 모르는 여성을 살해해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논의가 벌어진 데 이어, 불과 며칠 간격으로 부산의 번화가에서 50대 남성이 흉기를 들고 난동을 피운 사건, 가로수 지지대를 뽑아 행인들에게 휘둘러 상해를 입힌 사건, 등산로에서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는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다.
예전의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공격성과 섬뜩한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서 점점 더 자주 목격된다. 2015년 9월 한 십대 청소년은 자신이 다니던 중학교에 부탄가스로 폭발 테러를 저지르고 촬영해서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렸다. 비슷한 시기 20대 청년 여럿이 인천 부평구에서 길을 가던 커플을 폭행하고 SNS에 글을 올려 사람들을 분노케 했다. 한국의 일만이 아니다. 개인의 범죄든 집단의 조직적 테러든 이런 공격성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지난 7월 일본에서는 26세 청년이 지적장애인 시설에서 45명을 흉기로 찔러 19명이 사망한 일이 벌어졌다. 2015년 1월에는 실종된 한국의 어느 소년이 IS에 합류한 정황이 발견되었다. 이후 테러의 광풍은 무수한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며 유럽을 휩쓸고 아시아까지 도달했으며, IS의 스펙터클은 여전히 전 세계의 청소년들을 매혹하고 있다.
각각의 범죄들에 따져 물어야 할 개별적인 인과관계와 책임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이처럼 동시다발로 낯선 공격성이 등장하고 있는 현상은 그것만으로 결코 해명하거나 예방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이탈리아의 미디어 이론가이자 사회비평가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는 수많은 다중살인 사건들에 주목하며 그 끔찍한 광기를 이해해야만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편집자 리뷰

개인의 고통, 사회의 광기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는 미디어의 역할, 불안과 우울의 정치적 의미, 금융자본주의가 노동에 미치는 역할 등에 천착해온 저명한 이론가인 동시에 68혁명부터 베를루스코니의 미디어 독재에 맞선 저항에 이르기까지의 움직임에 활발하게 참여해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사회참여적인 사상가가 범죄와 자살이라는 가장 절망적인 사건들을 들여다보았다. 비포는 자신이 왜 이런 끔찍한 사건들을 들여다보는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지옥을 견디다 못해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과 죽음을 택한 사람들의 고통에 주목한다.
비포는 이 책에서 2012년 「다크 나이트 라이즈」 상영관의 총기 난사범을 비롯해 조승희, 콜럼바인 사건의 범인들, ‘유튜브 살인마’ 페카에릭 우비넨 등 과시적인 다중살인을 저지른 총기 난사범들을 소환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어떤 측면이 이런 괴물들을 키워냈는지 파고든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병폐와 부작용은 이미 많은 책이 지적해왔다. 그러나 이 책은 체제의 그림자를 읽어내기 위해 개인들의 고통을 깊이 들여다본다는 점이 큰 차이다. 구조의 부작용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결국 스스로와 타인들을 파괴하고 만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범죄에 대한 르포르타주, 영화와 소설을 비롯한 예술작품, 역사, 철학, 정신분석학을 넘나드는 탄탄한 지적 사유와 성찰을 통해 비포는 현대 사회의 불길한 징후들로부터 바로 지금 불안과 탈진을 견뎌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일상의 모든 측면에서 무너져 내린 근대라는 약속

이 책은 지난 수십 년간 성장, 인격 형성, 미디어 환경, 노동, 생산, 이주 등 우리의 삶과 일상을 둘러싼 모든 측면에서 일어난 총체적인 변화들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또 이런 변화들이 어떻게 우리를 분열적이고 불안정한 조건에 몰아넣었는지, 그럼으로써 살인, 범죄, 자살과 같은 끔찍한 풍경을 낳고 말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분석한다.
이 책은 인류가 발명한 ‘근대’라는 기획이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가를 탁월하게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하나의 사회로서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합의했으며 그것이 우리를 어떻게 보호해왔는지, 무엇이 결국 그 약속들을 파괴하고 우리를 끝없는 분열과 착취와 전쟁의 장으로 내모는지에 관해 대단히 통찰력 있고 피부에 와 닿는 설명을 제시한다. 휴머니즘의 태동에서 시작해 지난 수십 년간 벌어진 사건들을 꿰어 마침내 그 전통이 말살되기까지를 한 눈에 보여주는 저자의 내공은 놀라울 정도다. 이런 설명은 최근 브렉시트 사태에서 목격된 급격한 보수화 경향이나 일베를 위시한 인터넷상의 혐오발언 등 우리 곁에서 발견되는 징후들의 의미와 원인을 이해하는 데에 크나큰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다.
승자독식에 설득당한 젊은이들 핀란드의 요켈라 고등학교에서 학생 아홉 명을 살해한 페카에릭 우비넨은 자기 웹사이트에 「자연선택 신봉자의 선언문」이라는 글을 올렸다.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중 하나인 에릭 해리스가 범행 당일 입은 티셔츠에도 ‘자연선택’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비포는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시대에 자라난 이 젊은이들이 갖고 있던 승자독식이라는 생각에 주목한다. 이들이 경험한 패배의 모욕과 결코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절망은 우리가 일터에서 매일같이 겪고 있는 성과주의와 소외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디어의 변화와 디지털화의 영향 범죄 행위의 양상이 예전과 크게 달라진 점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서 온다. 모두가 자기 생각을 자유로이 전파할 수 있는 유튜브와 SNS의 시대, 팔로워 수와 조회수로 평가받는 소셜미디어의 시대에는 누구라도 순식간에 유명세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살인과 뒤따르는 자살은 일종의 자기 홍보”가 된다. 대학살을 예고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자신의 살인 행위를 뒷받침하는 생각을 웹사이트에 게재한 다중살인자들을 통해 비포는 메시지, 미디어, 범죄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그런데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범죄의 양상을 바꿔놓았을 뿐 아니라 젊은 세대의 성장과 학습 과정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쳐 인격의 형성 자체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비포는 비디오게임의 폭력적인 내용 등이 아닌 디지털 자극과 소통 자체가 “부모보다 기계로부터 더 많은 말을 배운” 젊은 세대의 정신에 미친 영향에 주목한다.
제도화된 범죄와 자살적 사회 비포는 ‘제도화된 범죄’라는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바라본다. 총기 난사나 묻지마 살인과 같은 극악하고 끔찍한 범죄들만이 뉴스가 되지만, 사실 금융자본주의 자체가 범죄를 새로운 정상으로 만들어버린 체제가 아닌가 묻는다. 오늘날 지배계급은 더 이상 과거의 부르주아지처럼 자신의 영토나 공동체에 책임지지 않는다. 금융경제는 오직 디지털 숫자의 형태로만 이익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부도나 파산에서 보상을 얻는 파생금융상품이 보여주었듯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약탈적 금융은 세계의 붕괴에 베팅함으로써 이득을 얻는다는 점에서 범죄적이다.
정체성이라는 함정과 만연한 혐오 끊임없이 불안정성을 견뎌내야 하고 사회적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유일하게 안식처를 제공해주는 소속감, 즉 국가나 민족 같은 정체성에 매달리게 된다. 이 책은 전 지구적 탈영토화의 시대에 정체성이 어떻게 오인되었으며 타자에 대한 공격성과 혐오로 귀환했는지를 밝힌다. 여성혐오와 이슬람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살인마 아네르스 브레이비크, 9.11 이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유발한 IS의 발흥, 유럽의 신보수주의를 따라가는 비포의 시선은 오늘날 만연한 타자에 대한 혐오의 뿌리를 설득력 있게 밝혀낸다.

목차

1장 조커
실제상황처럼 | 예술과 삶 | 캣우먼 상심하다 | 조커와 신 | 따돌림 | 무기 |가장 수치스러운 날 | 배트맨과 로브 | 동원 | 하프시그마

2장 인류는 과대평가되었다
예술과 죽음 | 페카에릭 우비넨 | 자연선택 신봉자의 선언문 | 휴머니즘과 자연 | 사회적 문명, 사회적 다윈주의 | 유튜브 살인마

3장 한순간의 승리
콜럼바인 | 기술-언어의 불안정성 | 한순간의 승리 | 크립토나이트 | 저스트 두 잇 | 북극의 해빙

4장 조승희의 심리영역
조승희의 고통 | 침묵의 말하기, 글쓰기, 머물기 | 우리는 잠만 한방에서 잤을 뿐 | 빈 집

5장 범죄란 무엇인가?
기호자본과 바로크의 윤리 | 신과 범죄 | 욥 | 니힐리즘 | 절대자본주의

6장 자동인형
신보수주의 살인자 | 정체성에 대한 강박 | 파시즘과 나치즘 | 아버지 없는 문명 | 기독교 유럽 | 혐오증의 아바타

7장 기억
정체성과 정체화 | 정체화라는 함정 | 궁극적 자살

8장 당신들은 결코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신경착취와 붕괴 | 미래라는 구속 | 브레진스키는 틀렸다 | 무작위 살인자들 | 경찰에 의한 자살

9장 자살이라는 물결
1977년 일본 | 히키코모리 | 푸푸탄 | 포획 | 자살이라는 풍토병 | 개인 평가 | 이탈리아 철강 | 몬산토의 수확 | 폭스콘의 분노 | 좀비들 | 은행가들은 왜 자살하는가?

10장 서울 여행
인천공항 | 역사, 망각, 그리고 시뮬라시옹 | 완벽하게 재조합된 도시 | 사막화 | 종말 뒤에 이어질 르네상스의 조건

11장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불안정성의 윤리 | 다음 게임 | 어두운 시대정신 | 대피소를 짓지 말라 | 경련 | 디스토피아의 아이러니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 문헌
참고 영화
찾아보기

작가 소개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미디어 활동가. 지난 40년간 68혁명, 1977년의 이탈리아 자율주의(아우토노미아), 90년대 후반의 반세계화 운동, 최근에는 유럽에서 노동조건의 불안정화와 공교육 예산 삭감에 맞선 움직임에 활발히 참여했다. 잡지 ‘아/트라베르소’를 창간하고 이탈리아 최초의 자유라디오 방송국 ‘라디오 알리체’를 설립하는 등 미디어와 사회운동의 결합을 계속해서 실험해왔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미디어 독재에 맞선 미디어 운동 ‘텔레스트리트’를 촉발시킨 오르페오TV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이론가로서 그는 후기자본주의에서 미디어와 정보기술의 역할, 자살·우울·불안의 정치적 중요성, 금융자본주의와 노동의 불안정화의 관계 등에 깊은 관심을 두고 다뤄왔다. 펠릭스 가타리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지적 동반자로 알려져 있다. 현재 브레라국립예술대학에서 미디어의 사회사를 가르치고 있다. 『프레카리아트를 위한 랩소디』, 『미래 이후』, 『봉기: 시와 금융에 관하여』, 『노동하는 영혼: 소외에서 자율로』 등을 비롯해 30권이 넘는 저서를 쓰고 여러 매체에 기고했다.

송섬별 옮김

책을 번역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옮긴 책으로는 『애너벨』, 『너를 비밀로』, 『자, 살자』 등이 있다.

독자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