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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멜랑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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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카피: 당인리발전소에서 대공분실, 아현고가도로를 거쳐 고속버스터미널까지 한국에서 가장 정치적인 공간을 만나다

부제: 한국 근현대 건축·공간 탐사기

이세영

출판사: 반비

발행일: 2016년 10월 14일

ISBN: 978-89-8371-812-9

패키지: 반양장 · 46판 128x188mm · 332쪽

가격: 17,000원

분야 문화, 대중문화


책소개

당인리발전소에서 대공분실, 아현고가도로를 거쳐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건축과 공간에서 시대의 징후를 읽다!

권력과 자본, 종교는 건축과 공간에 자신의 비의(秘義)를 새겨 넣는다. 동시에 저항자들은 기존의 건축과 공간 안으로 뛰어들어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건축과 공간의 정치·사회적 배경과 맥락을 정밀하게 분석하면서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욕망과 그 속에서 먹고 살고 싸웠던 사람들의 열망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무심코 지나쳤던 주변이 모두 새롭게 보일 것이다.
―조국(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건축은 공간예술인 동시에 생활공간이다. 공간예술로서 건축이 문학에 잇닿아 있다면, 생활공간으로서 건축은 역사와 사회를 품고 있다. 건축에 담긴 문학적 상상력, 역사의 증언, 사회적 소통을 읽어내는 것이 저자의 건축 독해 방식이다. 이 책을 통해 건축은 정지된 공간이 아닌 살아 있는 공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선다.
―김호기(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한국 근현대 건축과 공간을 애도하기

우리는 오늘 하루를 보내며 어떤 건축물과 공간들을 이용하였을까. 일상적으로 수많은 공간을 접하지만, 공간의 의미나 의도, 효과 등을 생각해볼 기회는 많지 않다. 이 책은 삶의 물리적 배경으로 말없이 존재하는 공간의 심층을 들여다보며, 깊이 있는 읽기와 비평을 시도한다. 저자의 시선에 포착된 공간의 의미는 다층적이다. 건물의 외형, 용도와 기능에서부터 건축과 공간의 기획과 설계 과정, 그것에 투사된 설계자의 의도, 정치적 기획과 상품으로서의 특징, 경제적 고려, 공간 이용자들의 실천을 중심으로 공간이 거쳐온 역사 등 다양한 요소와 이야기를 엮어낸다.
이 책은 16개의 건축과 6개의 공간을 다룬다. 그중에는 김중업의 ‘서산부인과의원’, 김수근의 ‘세운상가’처럼 걸출한 건축가의 대표작이나 시대를 대표하는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도 있지만,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름 없는 생활공간, 또는 발전소, 지하도, 도로 등 도시 설비와 인프라에 해당하는 곳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일상 공간들은 저자 특유의 관점과 읽기 방식을 통과해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그 공간들의 목록은 ‘자유센터’, ‘국방부 구관’, ‘국회의사당’, ‘광주시민회관’ 같은 국가·공공기관의 건축물에서 ‘세운상가’, ‘유진상가’ 등의 상업·주거 공간, ‘당인리발전소’, ‘아현고가도로’, ‘고속버스터미널’ 등의 현대적 시설, ‘성 니콜라스 성당’, ‘여의도순복음교회’, ‘도원빌딩’ 등의 종교적 건축뿐만 아니라 ‘종묘공원’, ‘가리봉동’, ‘노을캠핑장’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한국의 도시 공간들은 쉴 틈 없이 반복되는 파괴와 건설을 통해 빠르게 변화한다. 그 과정에서 건축물과 장소들은 충분히 기억되지도, 적절한 의미를 획득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망각되지도 못한 어정쩡한 상태로 무너지고, 재개발되어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공간들은 곧잘 시간의 무서운 파괴력과 무상함을 상기시키고, 멜랑콜리의 정조를 발산하며 신경증적인 상태로 남아 있다. 또 건축물과 공간은 특히 한국 근대의 착종적인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데, 이질적인 욕구와 기획의 충돌과 경합, 그리고 빈번한 좌절이 멜랑콜리를 낳았다. 이 책은 이렇게 좌절된 채 남아 있는 도시 공간을 때론 비판적으로, 때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공력을 들여 바라봄으로써 압축적 근대화와 성장 제일주의에 밀려 많은 것을 잃고도 대부분이 슬퍼하지 않았던 도시에 대한 애도 작업을 시도한다.


목차

1. 건축 읽기
서산부인과의원 풍화의 운명 견뎌온 콘크리트 모성
당인리발전소 땅 밑으로 유배 가는 늙은 프로메테우스
남산 자유센터 반공의 이념 앞에 헌정된 정치적 신전
연세대 학생회관 신이여, 혁명이여, 이 도저한 멜랑콜리여
아현고가도로 잠시 서 있는 모든 것을 추모함
세운상가 하늘 아래 새로운 욕망은 없다
성 니콜라스 성당 마르크스가 예견 못한 성과 속의 변증법
용산 국방부 구관 군림하되 한곳만 바라보다
국회의사당 과장된 위엄이 비치는 무능의 석실묘
제주 소라의 성 순치된 스펙터클을 욕망하다
유진상가 비루하고 데데한 유신 건축물의 비애
여의도순복음교회 거룩한 천상의 빵, 신의 이름으로 약속된 세속적 번영
광주시민회관 패배하라, 포에틱 자스티스를 위하여
남영동 대공분실 살인 기계 빚어낸 애국적 판단 중지
고속버스터미널 불균등 발전의 기념비적 표상
마포 도원빌딩 주류 세계를 향한 미완의 인정투쟁

2. 공간 읽기
광화문 지하도 우리는 모두 노숙인이다
종묘공원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노을캠핑장 21세기의 가족로망스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청계천 천변풍경, 견유주의자의 시선
가리봉동 톨레랑스의 윤리학을 넘어서
서울 강남 강남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책을 펴내며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


편집자 리뷰

공간에 새겨진 정치적 무의식
한국에서 가장 정치적인 공간을 만나다!

대개의 건축이나 공간 관련 책들이 통상 건축물의 설계 의도와 설계 과정에 주목하는 것과 달리, 『건축 멜랑콜리아』는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통해 병의 기원을 탐지하듯 건축과 공간을 ‘징후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건축물은 부의 증식을 위한 투자 대상이거나 건축가 고유의 조형 언어로 완성된 예술 작품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풍부한 의미를 담지한 채 능동적 해석을 기다리는 문화 텍스트이자 국가와 자본의 권력이 작동하는 사회적 매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건축과 공간을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로 꼼꼼히 읽고 분석한다.

국가와 자본의 지배 전략 │ 건축과 장소에서 그것을 기획한 국가와 자본의 의도, 공간에 투영된 권력의 통치 전략을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박정희 정권이 세운 여러 정치적 기념비와 유신 시대를 상징하는 건축물 중에서 가장 먼저 건설된 남산의 자유센터를, 저자는 반공주의란 동시대의 이데올로기 그 자체를 기념하는 독특한 ‘정치적 신전’이라 이름 붙인다. 여기에는 위엄과 숭고미가 강조된 건축물을 이용하여 독재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국가권력의 전략이 자리하고 있었다. 국가의 이름으로 잔인한 고문이 자행된 남영동 ‘대공분실’의 사례에서는 건물의 내부 구조와 설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사받는 사람에게 공포를 유발하고, 복종하는 신체를 만드는 데 기여했는지를 분석한다.
종로 일대의 슬럼을 2개월 만에 쓸어내고 건설된 대규모 주상복합건물인 세운상가는 네 개의 건물군이 일렬로 늘어서 당시 주변 풍경과 대비를 이루는 압도적 수직성과 육중한 몸체를 구현했다. 개발독재 정권은 근대화와 경제 성장이라는 집권 명분과 스스로의 치적을 효과적으로 전시하는 매체이자 스펙터클로 이를 이용했다. 한편으로 ‘도시 안의 도시’를 꿈꾼 설계자의 구상과 이상이 애초부터 이윤 논리에 밀리면서 세운상가가 실제 완성된 모습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건축에서 읽어낸 역사의 층위 │ 역사와 시대의 영향 아래 건축물은 지어졌고, 건축물 역시 자신의 역사를 쌓아오며 주변 공간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국회의사당에 애초 계획에 없던 돔 지붕이 의원들의 요구로 추가되는 동안 입법부와 의회민주주의는 군부독재에 의해 그 어느 때보다 무력화되었고, 유진상가는 상가아파트로서는 이례적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서울 요새화 계획’의 일환으로 군사 시설로서의 역할을 떠안게 되었다. 통일교회는 순복음교회가 한국 사회의 경제적 발전 정도에 발맞춰 기복적 신비주의에서 세속적 성공주의로 신앙 담론을 이동한 것과 같은 변화를 감행하지 못했고, 순복음교회가 여의도에 입성하여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하는 동안 마포대교의 바로 입구에서 인정투쟁을 위한 행진을 멈추어야 했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역사적 사건과 흐름을 단순한 배경지식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주 구조에 억지스레 돔을 얹어 권위나 위엄을 과장한 의사당의 외관에서, 보통 상가보다 높은 유진상가의 1층 필로티 공간과 상가 전체의 견고한 철근콘크리트에서,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형상과 풍경에서 그 너머의 맥락과 시대의 열망을 독해하고 있다.

공간 이용자의 욕망, 심성과 실천 │ 저자가 공간을 읽어나가며 주요하게 살피는 것 중 하나가 공간을 실제로 점유하고 이용했던 사람들이 그 속에서 원하고, 느끼고, 상호작용했던 바다. 공간 이용자들의 실천은 공간을 기획한 건축가의 의도나 국가와 자본의 이해를 벗어나 공간의 정체성과 의미, 공간을 지배하는 분위기를 전유하고 바꾸어낸다.
가령 연세대 학생회관은 애초 건축가와 건축주에 의해 종교적 ‘신실성’을 구현하는 곳으로 기획되었지만 학생운동의 성장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졌다. 열사들의 죽음이 사건화되는 현장이었던 학생회관은 실제 공간을 점유하고 사용했던 학생들의 실천에 의해 ‘진정성’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후 학생운동이 쇠퇴한 사이 대학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었고, 학생회관이 상징하는 가치와 정서는 학생들의 욕망과 심성 구조의 변화를 반영, 다시 ‘속물성’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이념의 기념비를 꿈꿨던 자유센터가 냉전 해체와 이념 대결의 쇠퇴를 겪으면서 여러 업체에 임대되고, 과거의 위세를 잃어버린 상황 역시 공간의 의미를 결정짓는 것은 이용자들의 활동임을 보여준다.

이렇듯 이 책은 건축가의 기획을 주로 분석하는 다른 건축 서적들과 달리, 공간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다양한 개인들의 미시적 활동과 집단 무의식을 함께 읽고자 한다. 또한 이런 시도는 이론서, 신문 잡지, 국가기록물, 구술 기록 등 다양한 문헌의 활용, 직접 취재한 내용 등으로 뒷받침돼 책의 서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러한 공간비평의 방식은 곧 문화비평이자 사회비평으로 이어지며, 빙산의 일각처럼 건축의 보이는 것 아래에 존재하는 더 많은 내용들, 공간과 역사를 이해하는 유용한 방식을 제안한다.

 

일상의 공간들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낯선 공간으로 다가온다!

1960~1970년대의 압축 성장을 추진한 박정희와 불도저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행정가 김현옥의 만남은 아현고가도로, 광화문 지하도 등 여러 입체적인 교통 시설들을 건설함으로써 도시의 이동 속도를 높이고, 발전과 개발을 상징하는 도시경관을 창조했다. 과거 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의 왜소한 모습과 대규모 상업 시설을 갖춘 경부선 터미널의 화려한 외관의 격차는 지역 차별을 표상하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복개와 복원을 거쳐 오늘날 대표적인 도심 하천으로 자리 잡은 ‘청계천’의 역사, 구체적인 풍경과 여러 구성물에서 집단적 소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여전히 남아 있는 청계고가의 교각은 개발 시대의 영광을 희미하게 상기시키며, 현재의 복원된 청계천을 만든 도시재생의 논리가 패배하게 될 때 청계천이 맞닥뜨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직접 청계천에 대한 추억이나 소망을 그린 타일 벽화는 청계천의 벽면에 걸린 채 사람들이 청계천이라는 인공 자연에 기대하고 소망한 것이 무엇인지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익숙하고 특별할 것 없어 주목하지 못했던 건축물과 공간들은 정치사회적 관점과 역사적 맥락, 건축가와 행정가, 그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엮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은 곳이 된다. 일상의 공간을 문득 낯설게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다. 이 낯설게 보기는 결국 지금 이곳을 다시 돌아보고, 현재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건축의 공공성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는 요즘 우리는 긴 시간을 버틴 근대 건축이나 자본의 논리에 따라 선택의 기로에 선 삶의 공간들을 더 많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먹고 자고 살아가는 공간의 운명을 바꾸고 결정짓기 전에 건축과 공간에 중첩된 이야기에 귀기울여보기를 요청한다.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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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

이세영은 연세대 신학과와 같은 대학 사회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2년 《서울신문》에 입사해 사회부, 국제부, 정치부를 거쳤다. 2008년 《한겨레》로 옮긴 뒤에는 문화부 학술담당과 한겨레21부 사회팀장을 지내며 사상, 문학, 건축 등으로 관심 영역을 넓혀왔다. 현재 『한겨레』 정치부 기자로 야당을 출입하고 있다. 노동정치의 위기와 노동계급 2세들의 악마화 메커니즘을 고발한 『차브』를 공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