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녀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김용언

출판사 반비 | 발행일 2017년 6월 19일 | ISBN 978-89-8371-851-8

패키지 양장 · 46판 128x188mm · 236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소녀 취향, 감상주의, 미성숙함……
‘문학소녀’는 어떻게 안전하게 놀려댈 수 있는 대상이 되었을까

“그 시절의 문학소녀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싶다. 어쨌든 우리는 계속 읽고 쓸 것이므로.”
―조남주(소설가, 『82년생 김지영』)

“이 책은 여성들의 읽기와 쓰기의 의미를 결정하고 구성하는 해석 투쟁이 드디어 시작됐다는 선언이다. 이런 책이 우리 서재에 200권쯤 꽂혀 있게 되길 열렬히 바란다.”―오혜진(문학평론가)

“너무 오랫동안 오해받아온 전혜린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부활한다. 여성의 자유로운 감수성을 억압하는 사회, 여성의 성취를 은근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사회를 향해 오직 자신의 글쓰기로 투쟁한 예술의 전사로 다시 태어나는 전혜린은 그 어느 때보다도 눈부시다.”―정여울(작가)

신여성에서 전혜린까지, 읽고 쓰는 여자들의 수난사

미문 취향, 낭만적 감상성, 부르주아, 서구 동경, 소녀 감성……. 오랜 세월 여성 작가들의 글에 따라붙어온 수식어들이다. ‘문학소녀’라는 말도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고, ‘역사의식’이 없으며, ‘감상주의’에 치우쳐 있는 ‘미숙한 글’이라는 등의 온갖 폄하를 응축한 것 같은 단어다. 그리고 전혜린은 그런 ‘부잣집 철부지 문학소녀’의 대명사로 가장 자주 불려나왔던 인물이다. 박정희는 저서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전혜린으로 대표되는 이런 교양주의를 “불란서 시집을 읽는 고운 손의 소녀”라 부르며 “피와 땀과 눈물을 모르는, 노동하지 않는 자”, “우리의 적”으로 지목함으로써 전혜린, 문학소녀를 구악(舊惡)이자 적폐로 상징화하기도 했다. 온통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남발하고, 한국에 발을 딛고도 유럽의 어딘가를 고향처럼 그리워하며, 끊임없이 세상과 불화하는 자기 자신에게 몰두했던 전혜린의 글은 많은 여성들에게 책 읽는 사람으로서 자의식을 키우게 만든 출발점이지만, 황급히 잊고 극복해야 할 ‘흑역사’로 여겨지기도 했다.
『문학소녀』에서 그 스스로 ‘읽고 쓰는 여성’인 저자 김용언은 전혜린을 경유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읽기와 쓰기가 폄훼되어온 기나긴 역사를 파헤친다. 1920~30년대 ‘여류 작가’들이 글을 쓴다는 사실만으로 신기한 취급을 받으며 남성 평자들에게 멋대로 논평할 대상이 되곤 했던 풍경을 환기시키고, 1960년대 여학생 대상의 잡지에서 “지나치게 감상에 빠져서는 안 되지만 소녀다움을 잃어서도 안 되는” 이중규범을 발견한다. 걸출한 화가이자 문인이었던 나혜석조차 「이혼고백장」에서 가부장제를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격심한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결국 가족과 사회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채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여성 작가는 작품이 아닌 ‘스캔들’로 소비되기 일쑤였다. 잡지 《신여성》에는 근대 최초의 여성 작가 김명순, 《신여자》 주간으로 활약했던 김원주 등 여성 문인들의 온갖 사생활과 뜬소문을 폭로하며 깎아내리는 코너 ‘색상자’가 있을 정도였다. 1930년대부터 등장한 강경애, 모윤숙, 최정희 등 ‘2세대 여류 문사’들은 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여류에 대한 편견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소녀 문단”, “여류라는 프레미엄”, “지나친 섬세 감각이라는 한계성” 등 이 시기 여성 문인들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범주화한 남성 지식인들의 언어를 자세히 살펴본다. 한국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과거를 추적함으로써, 왜 소녀들은 전혜린의 글을 통해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에 입문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경멸과 비웃음을 이기지 못하고 ‘여류’를 벗어나려 애쓰게 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편집자 리뷰

‘책 읽는 여자의 흑역사’ 전혜린을 다시 읽다

“전혜린의 수필들은 비범함을 열망했던 평범한 여성의 평범한 마음의 풍경을 보여준다.” 고종석이 『말들의 풍경』에서 전혜린에 대해 내렸던 냉정한 선고다. 많은 평자들은 전혜린을 ‘문인’ 혹은 ‘작가’로 부르기를 저어했고, 그녀는 ‘제대로 된’ 작가라기보다 철없는 시절의 열광, 미성숙했던 특정 시기가 지나면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치부되기 마련이었다. 반면 전혜린은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청춘들의 정신적 풍경을 형성하는 데에 일조했던 아이콘이기도 했다. 많은 젊은이들, 특히 ‘문학소녀’들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으며 문학적 감수성의 첫 단계에 입문했고, 그녀가 펼쳐 보인 뮌헨의 생생한 묘사 속에서 ‘여기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꾸었으며, 문학과 글 속에서 비로소 현실 세계에선 찾지 못했던 자신의 자리를 발견했다. 『문학소녀』는 전혜린에 열광했던 이들의 관점에서, 그녀의 글에 몰두했던 한때의 기억에서 출발해 전혜린을 재조명하려는 시도다.
저자는 전혜린이라는 아주 예외적인 존재의 등장을 가능케 했던 시대적, 사회적 맥락을 살피는 동시에, 너무나 자주 오해되거나 표면적으로만 읽혔던 그녀의 글을 그러한 맥락 속에서 다시 읽어낸다. 1950년대 한국 사회라는 맥락에서 전혜린의 성장 환경을 객관적으로 살핌으로써 손쉽게 ‘미성숙함’으로 치부되던 서구 교양에 대한 동경이 당시 교육받은 여성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밝힌다. 또 독일로 유학을 떠나서도 출산과 육아를 감당하고 같은 유학생이었던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번역과 집필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던 개인사를 조명하며 당시 여성 지식인이 겪어야만 했던 분열을 짚어낸다. 그리고 한국어로 쓰인 기행문을 살필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저자로서 전혜린, 그리고 남다른 감식안을 갖춘 번역가이자 출판 기획자로서 전혜린이라는 존재를 재조명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전혜린이라는 인물의 한계를 짚어내는 동시에 그녀에게 매혹되었던 많은 이들의 기억의 의미를 발굴하는 균형 잡힌 시선은 한 시절을 뒤흔들었던 중요한 사건으로서 전혜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여성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문학사, 여성 공동의 문화적 기억

김용언은 『문학소녀』와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했던 자리에서의 에피소드를 전한다. 저자보다 많게는 스무 살, 적게는 열 살가량 어린 참석자들은 당연히 ‘전혜린’이라는 이름조차 알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전혜린을 알고 있었고, 대부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었다고 했다. 그 책을 읽게 된 계기를 질문하자 어머니의 책장에 꽂혀 있어서, 친했던 선생님이 추천해서 같은 답이 돌아왔다. 전혜린이 숨을 거둔 1965년 이후로 50년이 더 지나도록, 젊은 여성들은 다른 여성을 통해 그녀의 글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책이, 문학사가 분명히 존재한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한국 사회를 풍미했던 베스트셀러 목록, 즉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와 같은 남성 저자들의 책이 차지했던 자리들 뒤로 좀처럼 기록되지 않은 또 다른 ‘문화적 기억’이 존재한다. 저자는 스스로의 경험을 호출해서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명작동화 전집, 에이브 문고, 에이스 문고, 파름문고, 할리퀸 로맨스, 그리고 전혜린과 같은 단어들을 통해 이 계보를 재구성한다. 이 책은 그런 “‘문화적 기억’의 근원을 알아내기 위한, 어린 시절을 오랫동안 사로잡았던 전혜린을 이해하기 위한” 여성 작가의 독서기이기도 하다. 한번이라도 읽는 사람, 쓰는 사람이었던 여성 독자들에게 이 책은 이러한 공동의 기억을 다시 소환하고, 사회의 시선에 짓눌려 있던 자신의 매혹과 판단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추천사

교실 맨 뒷자리, 펼쳐 세운 교과서 안에 전혜린의 책을 숨겨놓고 읽었다. 똑같은 교복, 꽉 짜인 시간표, 유독 여학생에게 엄격한 규범과 편견이 갑갑했던 기억. 그 시절의 문학소녀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싶다. 어쨌든 우리는 계속 읽고 쓸 것이므로.
—조남주(소설가, 『82년생 김지영』)

미문, 감상주의, 부르주아, 서구 동경, 소녀 취향…… 그 모든 오명과 흑역사의 알리바이들. 이 책은 여성들의 독서와 글쓰기를 평가절하해온 비평 기율들에 대한 다각적이고도 전면적인 반박이다. 이 책은 ‘문학소녀’가 더 이상 어떤 ‘미달태’의 상징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여성들의 읽기와 쓰기의 의미를 결정하고 구성하는 해석 투쟁이 드디어 시작됐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런 책이 우리 서재에 200권쯤 꽂혀 있게 되길 열렬히 바란다. —오혜진(문학평론가)

사랑하는 대상에겐 왠지 편들고 싶은 마음, 편애하는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전혜린을 사랑하는 김용언의 마음에는 편애도 편파도 없다. 장점은 확실히 띄워주고 결점은 가차 없이 비판한다. 그는 세간에 알려진 전혜린에 대한 온갖 오해와 편견을 향해 반기를 들고 용감히 싸운다.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자유로운 거리 조절이 가능한 김용언의 단단한 내공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책이다. 이 책 속에서 나는 전혜린과 김용언의 아름다운 투쟁의 하모니를 발견한다. 이 시대의 당당한 문학소녀 김용언을 통해 다시 태어난 전혜린은 더 이상 연약한 귀족적 취향의 창백한 지식인이 아니다. 너무 오랫동안 오해받아온 전혜린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부활한다. 여성의 자유로운 감수성을 억압하는 사회, 여성의 성취를 은근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사회를 향해 오직 자신의 글쓰기로 투쟁한 예술의 전사로 다시 태어나는 전혜린은 그 어느 때보다도 눈부시다. —정여울(작가)

목차

들어가며 전혜린은 ‘흑역사’인가

1 전혜린이라는 예외적 존재
2 한국을 탈출하려는 꿈
3 전근대 한국의 세계시민
4 전혜린은 ‘창작’하지 못했는가
5 수필이라는 퍼포먼스
6 신의주, 부산, 그리고 슈바빙
7 번역가 전혜린
8 “절대로 평범해져서는 안 된다”
9 신여성에서 여학생까지, 소녀의 탄생
10 ‘소녀 감성’의 폄하
11 여류 작가 수난사
12 “불란서 시집을 읽는 고운 손”
13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

후기
참고문헌
전혜린 연보

작가 소개

김용언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기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비교문학 협동과정을 졸업했
다. 영화 전문지 《키노》, 《필름2.0》, 《씨네21》과 장르문학 전문지 《판타스틱》
에서 십여 년간 기자 겸 편집자로 일했다. 지은 책으로 『범죄소설, 그 기원과
매혹』이 있고, 옮긴 책으로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가 있다.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7년 9월 4일

ISBN 978-89-8371-865-5 | 가격 12,000원

독자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