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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빼앗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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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부제: 거대 테크 기업들은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조종하는가

원제 World Without Mind

워서 부제: The Existential Threat of Big Tech

프랭클린 포어 | 옮김 박상현, 이승연

출판사: 반비

발행일: 2019년 7월 15일

ISBN: 979-11-8919-888-6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0x220 · 324쪽

가격: 18,000원

분야 정치, 사회

수상/추천: LA 타임스, NPR, 가디언,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책소개

거대 테크 기업들은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조종하는가

 

★ 뉴욕타임스, 엘에이타임스, NPR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 선정! ★

“포어는 이 문제를 세계 최고 수준에서 다룰 수 있는 필자다.” 《워싱턴포스트》

“포어는 테크 업계의 역사적인 인물들이 어떻게 유토피아와 독점주의를 동시에 뭉뚱그려 추구하는지 생생하게 그려 보여준다.” ≪NPR≫

“포어가 실리콘밸리의 권력자들에 대해 처음 우려를 제기했을 때 사람들은 웃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이제 예언서가 되었다.” ≪가디언≫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은
어떻게 지식과 사상, 프라이버시, 문화를 파괴하는가 

 

우리는 아마존에서 쇼핑을 하고 페이스북에서 친목을 다지며 애플을 통해 여가를 즐기고 구글에서 정보를 얻는다. 효율성을 판매하고 있다고 알려진 이 기업들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고 광고하지만, 실상 이들은 사람들을 편의성에 중독시키고, 불안정하고 편협하고 오류투성이의 문화에 익숙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우리를 개인의 사유, 자율적인 사고, 고독한 성찰의 시간이 사라진 세계로 이끈다. 내적인 삶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거대한 기업들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기업들의 성공을 뒷받침한 관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흔히들 자유지상주의가 실리콘밸리를 지배할 거라 짐작하는데,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유명인들 중에는 아인 랜드를 사상적 스승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테크계의 거물들에게 귀를 기울여 보면, 그와는 다른 세계관을 발견하게 된다. 오히려 영웅적 개인을 숭배하는 자유지상주의와는 정반대에 가깝다. 테크 대기업들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이며 집단적으로 존재하도록 태어났다고 믿는다. 이들은 네트워크와 집단이 가진 지혜, 그리고 협업을 기꺼이 신뢰하며, 원자화된 세상을 복구하려는 깊은 열망을 품고 있다. 세계를 연결하면 문제를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이들이 사용하는 수사법에는 인간의 개인성(individuality)에 대한 존중이 드러나지만(테크 기업들은 “사용자”에게 권한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세계관은 그와는 정반대다. 심지어 흔히 사용하는 사용자라는 표현도 사람들을 수동적이고 관료주의적으로 묘사한 것처럼 들린다.(12~13)

유럽에서는 이런 테크 대기업들을 하나로 묶어서 GAFA(Google, Apple, Facebook, Amazon)라고 부르는데(이 기업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재치있을뿐더러, 그 특성을 제대로 본 것이기도 하다.) 이 네 개의 기업은 지금 개인성(개별성)을 보호하는 원칙들을 무너뜨리는 중이다. (……) 또 경제 영역에서는 인류가 공공선과 위대한 목표들을 추구하는 것을 경쟁이 방해한다는 정교한 논리를 내세워 독점을 정당화한다. 테크 기업들은 개인주의(혹은 개인성, individualism)의 핵심을 이루는 자유의지에 대해서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들은 각 개인이 하루하루 내리는 크고 작은 선택들을 자동화하려 한다. 어떤 뉴스를 읽을지, 어떤 물건을 살지, 어떤 길로 이동할지, 어떤 친구를 사귈지 등을, 테크 기업이 만든 알고리듬이 제안한다.(13~14)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의 기업적 야망은 오랫동안 인간이 지켜온 자유주의적인 가치들, 특히 지적 재산(저작권)과 프라이버시의 개념을 뒤흔드는 것이다. 구글과 페이스북과 아마존과 애플은 공공연하게 무단 복제를 권하고(심지어 구글은 스스로 역사상 최악의 무단 복제를 감행한 바 있다), 그럼으로써 지식의 생산과 관련된 노고를 평가절하하며(이들은 지식의 생산보다는 지식을 걸러내거나 정리하는 쪽에 초점을 맞춘다), 데이터들을 무작위로 수집해 마음대로 실험에 활용하고(2017년에 씌어진 이 책은 페이스북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용 사태를 예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알고리듬이 만병통치약인 듯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의도를 감춘다(실제로는 이 기업들의 이익추구 방향에 따라 알고리듬의 작동의 방향도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자꾸 망각하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진정한 의미의 지적 추구와 생산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마치 식품 대기업이 탄생했던 1950년대처럼 편리함을 무기로 건강과 환경에 해로운 근시안적 싸구려 문화를 유포하게 된다. 이들(특히 아마존)은 전통적인 게이트키퍼의 비효율을 지적하며 그 순기능을 사라지게 만들고, 경쟁을 비판하고 협력을 찬양하는 듯하면서 독점을 옹호하고, 결국은 거대한 획일주의, 순응적 사고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식생활에 일어난 혁명은 단순히 새롭고 재미나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 그 변화는 우리의 삶을 바꿔놓았다. 새롭게 등장한 제품들이 일상생활에 너무나 깊숙이 스며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편리함과 효율성, 풍요로움과 맞바꾼 비용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게 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새로운 음식이 놀라운 엔지니어링의 결과인 건 맞다. 하지만 이 엔지니어링은 사람들을 비만으로 이끌었다. 감칠맛을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나트륨과 상당량의 지방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음식을 먹다 보면 입맛이 바뀌고 허기를 달래기 어렵게 된다. 또한 그런 음식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고기와 옥수수가 추가 생산되어야 했고, 급증한 수요를 채우기 위해 미국 농업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환경에는 끔찍한 폐해를 불러왔다. 그 결과 완전히 새로운 기업형 농장이 등장했다. 한푼이라도 비용을 절감하려는 대기업들이 똥이 가득한 우리에 닭을 쑤셔넣고 항생제를 마구 주입했다. 소비 패턴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를 깨닫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우리의 허리둘레와 수명과 정신, 그리고 지구가 이미 피해를 입은 후였다.(15)

과거에도 독점기업들은 항상 존재해왔지만, 오늘날의 거대 기업들은 훨씬 더 사악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의사 결정을 내리는 모든 상황에서 영향을 행사하고 우리의 정체성의 모든 구석구석을 마음대로 접근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여태껏 이런 위협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명확히 포착한 사람이 없다. 포어는 획일화와 자동화에 맞서 개인의 독창적인 사유를 지켜내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테크 기업들에 이전 공공 미디어에 대해 적용되던 수준의 책임을 지우는 실질적인 대안(그리고 그 대안의 법적, 사회적, 경제적 근거)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설명한다.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비전, 낙관주의, 이상을 만들어온 사람들
(실리콘밸리의 정신을 창시한 주요 인물들의 약전)

포어는 이 책에서 거대 테크 기업들이 악의적으로 이런 변화(독점화, 자동화, 획일화, 순응화)를 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들의 이런 비고의성, 비악의성(실제로는 가식성)이야말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이들은 악의성은커녕 오히려 그 어떤 기업들보다 이상주의적인 어조, 거의 종교에 가까운 신념, 낙관주의적인 비전에 근거해 활동하는데, 이들의 궤변과 가식에 가장 많이 속고 있는 것은 아마 바로 그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런 전제하에, 포어는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에서부터 시작해 앨런 튜링을 거쳐 오늘날 실리콘밸리 문화의 기원이 된 스튜어트 브랜드까지, 테크놀로지에 관한 믿음의 지성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스튜어트 브랜드는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창시한 사람이다. 히피 왕국의 황태자이자 인디언 마니아이자 ‘트립스 페스티벌(1960년대의 도래를 알린, 3일간 지속된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환각제 파티)’의 기획자이자 잡지 《홀어스 카탈로그》의 발행인이기도 했던 브랜드는 반문화의 가치들을 테크놀로지와 연결시켜낸 최초의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는 《홀어스 카탈로그》를 자기 세대의 ‘바이블’이라고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변두리 지역이 하필이면 미국의 환각제 사용의 중심(브랜드의 영역)인 동시에 컴퓨팅의 중심지(엔지니어의 영역)였기에 젊은 엔지니어들은 스튜어트 브랜드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매료되었다. 이들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서로를 흡수해 퍼스널 컴퓨터라는 개념의 기초를 닦아냈다.

《홀어스 카탈로그》는 실리콘밸리의 기원이 되는 문서로, 이 지역의 문화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는 벤처 투자자와 테슬라 전기차들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과거 공동체의 흔적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CEO들이 조직의 위계를 무시하고 열린 사무실의 한가운데 다른 직원들과 섞여 앉아 일하며, 같은 방에 있는 다른 룸펜 프로그래머들과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또한 실리콘밸리의 독점 기업들이 이윤을 위해 존재하면서도 자기들을 스튜어트 브랜드가 평생을 추구했던 대로 세상을 ‘완전한 일체’ 단계로 끌어올릴 혁명분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프레드 터너의 중요한 책 『반문화에서 사이버문화로』에서 지적했듯이, “(《홀어스 카탈로그》는) 사람들이 마이크로 컴퓨터와 컴퓨터 네트워크를 해방의 도구라고 생각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었다.”(35)

테크 기업들의 계보가 (히피들의) 공동체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그들의 공동체 실험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개인숭배를 하는 컬트나, 서로 경쟁을 하는 작은 마을로 바뀌었다. 민주주의나 집단주의의 아름다운 비전은 하나같이 독재로 이어지거나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발행을 시작한 지 만 3년 만인 1971년, 스튜어트 브랜드는 《홀어스 카탈로그》의 발행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시대정신을 뒤바꾼 이 간행물의 종간을 기념하기 위해 ‘종간 파티’를 열였다. 카탈로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1000명 가까이 참여한 이 화려한 행사 역시 브랜드가 기획했다. 그는 히피 친구들을 샌프란시스코 마리나 근처에 있는 웅장한 전통 양식의 팰리스오브파인아트에 불러 모았고, 죽음을 상징하는 복장으로 검정 가톨릭 사제복을 입고 행사장을 돌아다녔다.(38)

마셜 매클루언 역시 이러한 믿음, 컴퓨터 테크놀로지가(그리고 기술이 만들어낼 네트워크가)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분열된 인류를 하나로 통합시키리라는 믿음을 오래전부터 설파했다. 매클루언의 뒤를 이어 리클라이더, 팀 버너스리가 각각 자신들이 만들어낸 인터넷과 웓드와이드웹이 가져올 ‘인류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꿈은 줄줄이 등장한 대규모 협업 프로젝트들의 원동력이 되었고, 1990년대 가상 커뮤니티부터 리눅스, 위키피디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오픈소스까지 이어지고 자본주의에도 받아들어져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역사적으로 가장 성공한 기업들의 사업 계획에까지 스며들어 있다. 개인성(개별성)에 대한 폄훼와 집단주의에의 경도는 테크 기업들의 비전을 관통하는 중요한 화두다. 그런 근본적인 관점으로 인해 자유주의적인 기반을 지니고 있을 법한 테크 기업들의 문화는 실은 그와 정반대의 가치인 독점을 옹호하게 되는 것이다.

매클루언은 자신이 설명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새로운 기술에 관해 그가 쓴 글을 살펴보면 낙관적인 기대가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쓴 책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을 신중하게만 다룬다면 세상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을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40)

테크놀로지가 가져올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황금광시대의 탐욕스런 독점 기업가들이 가졌던 사고방식 사이에는, 사람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특이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두 집단 모두 자본주의에 존재하는 힘겨운 경쟁을 벗어나려 하고, ‘협력’의 가치를 역설하며, 협력이야말로 경제적으로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한다. (……) 20세기 초에 AT&T를 키웠던 선각자 시어도어 베일은 “경쟁은 갈등과 산업 전쟁, 다툼을 부르며, 경쟁자들의 양심이 허락하는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상대를 음해하는 일에 가장 앞장섰던 철도왕들도 이타적인 협력의 가치를 찬양했다. J. P. 모건 본인도 그렇게 믿었다. 모건의 전기를 쓴 론 처르노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금융업자도 자유시장과 철천지 원수였다.”(46)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인 마크 앤드리슨은 독점을 선호하는 경향에 대해 거리낌없이 이렇게 말한다. “사실 대형 테크놀로지 시장은 승자독식의 시장이다. 일반적인 시장에서는 펩시와 코카콜라가 공존할 수 있지만, 테크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하나의 기업, 즉 1등 기업만이 살아남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게 핵심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이고, 언제나 그래왔다.(48)

인간의 두뇌를 뛰어넘는 기계(완전한 AI)를 만드는 것을 마스터 프로젝트로 삼는 구글에 영감을 준 것은 앨런 튜링(튜링 테스트)과 레이 커즈와일(특이점)이지만, 인공두뇌를 향한 프로젝트의 시작은 현대철학과 데카르트로 거슬로 올라간다. 옳고 그름을 기계적인 계산을 통해 계산해내고자 하는 페이스북의 알고리듬에 대한 숭배는 (야후 CEO였던) 마리사 마이어 같은 엔지니어링 엘리트들에 힘입은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라이프니츠의 보편기호법은 물론, 앙리 드 생시몽, 오귀스트 콩트의 테크노크라시에서 보이는 열망을 현실화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페이지는 연구를 중시한다. 구글은 지난 한 해에만 거의 1250만달러(약 140억 원)를 당장 돈벌이가 되지 않을 R&D에 투자했을 만큼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스타급 교수들이 대학을 떠나 구글에 머물면서 야심찬 연구를 진행하게 하고 있다. 만약 과학적 순수성의 추구가 기업의 이윤과 상충하면 페이지는 전자를 선택할 거라고 큰소리친다. 물론 그런 선택이 있었기에 구글은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다른 검색엔진들이 검색 결과의 상단을 돈 받고 파는 동안, 구글은 그렇게 대놓고 장사하기를 거부했다. 구글의 검색 결과는 과학을 추구하는 데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이상주의는 어느 정도는 홍보성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구글이라는 기업의 정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페이지와 브린은 2004년 뉴욕 증시에 구글을 상장하면서 증권거래위원회에 보낸 편지에서, “구글은 일반적인 기업이 아니며, 그런 기업이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선언했다. 공허한 미사여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 편지를 읽은 뉴욕의 증권업계는 속앓이를 했다. 구글을 잘 아는 사람들에 따르면, 이 회사는 MBA형 인재를 싫어하고 회사 내에 마케팅 부서를 두는 것을 고집스레 거부했다. 페이지는 비즈니스 감각을 요하는 자리에 다른 회사들처럼 재무를 아는 사람 대신 엔지니어를 앉힌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훗날 구글의 직원이 수만 명에 달하게 되었을 때도 래리 페이지는 채용 후보자의 개인 파일을 일일이 살펴보며 구글이 엔지니어링이라는 뿌리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챙겼다.(71)

구글의 이상주의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사악해지지 말자”라는, 종종 놀림감이 되곤 하는 구글의 모토다. 이 슬로건이 원래는 구글 내부에서만 사용되었고 외부에 공개하려 만든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의미가 쉽게 파악된다. 이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기업 가치의 표현이다. 구글은 직원들이 선하고도 야심찬 목표에 집중하도록 하려고 그 모토를 만들었고, 당시 구글이 꺾으려 했던 테크 업계의 1위 마이크로소프트처럼 편협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말자는 내부적인 결의를 표현했다. 그랬던 것이 당시 CEO였던 에릭 슈미트가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실수로 언급하는 바람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농담을 지어낼지 알았다면 저지르지 말았어야 할 실수였다(엄청난 조롱을 받은 끝에 구글은 결국 그 모토를 버렸다.).(72)

달리 말해 구글은 여러 중립적인 변호사들조차 사상 최대의 지적재산권 침해라고 하는 일을 도모했던 것이다. 구글은 왜 그런 일을 하려 했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구글이 시장 지배를 유지하려면 검색엔진이 모든 정보를 커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대한 인류의 지식이 저장되고 검색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드러나지 않는 다른 이유도 있다. 기술사학자인 조지 다이슨이 구글 본사 캠퍼스인 구글플렉스를 방문했을 때 한 엔지니어는 대수롭지 않게 이렇게 털어놨다. “사람들이 읽게 하려고 책을 스캔하는 게 아니에요. AI가 읽게 하려고 스캔하는 겁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구글이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하려던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류 지식의 보고조차도 구글에게는 기계를 훈련시키기 위한 재료에 불과했으며, 특이점을 위한 제물이었던 것이다.(77)

자신은 모르고 있겠지만, 저커버그는 오랜 정치적 전통의 후계자다. 지난 200년 동안 서구는 어떤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 안 하는 정치인을 없애고 그 자리에 엔지니어를 앉히고 싶다는 꿈이었다. 계산기를 사용하는 정치인 셈이다. 혁명을 겪으며 많은 희생을 치르고 난 프랑스가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을 가졌다. 앙리 드 생시몽, 오귀스트 콩트 같은 일련의 영향력 있는 철학자들은 진심으로 프랑스를 걱정했고, 프랑스 사회에 기생충처럼 붙어 있는 오랜 권력 기관들. 봉건 영주, 가톨릭 사제, 군인을 증오했다. 하지만 군중이 일으킬 혼란도 두려워했다. 그 절충안으로 찾아낸 것이 테크노크라시, 즉 엔지니어나 다른 기술자들이 사심 없는 정치를 하는 기술관료 체제다. 엔지니어들은 구체제의 권력을 무너뜨리고 과학 정신으로 정치를 하게 될 것이고, 이성과 질서를 이룩할 것이었다.(85~86)

알고리듬은 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특정 언어의 문장구조 밑에 존재하는 패턴을 찾아내어 번역을 해낼 수 있다. 알고리듬은 사람들이 찾을 생각도 해보지 못한 우연을 발견할 수 있다. 월마트의 알고리듬은 대형 태풍에 대비할 때 딸기맛 팝타르트를 열심히 구매한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하지만 알고리듬이 아무리 생각 없이 절차를 수행하고 데이터에서 새로운 패턴을 찾아낸다고 해도, 결국 알고리듬은 그것을 만들어내고 훈련시킨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한다. 아마존과 넷플릭스는 모두 책과 영화를 추천하기 위해 알고리듬을 사용한다(아마존에서 발생하는 구매의 3분의 1이 추천에 의한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알고리듬은 우리의 취향,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문화 소비자들의 취향을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두 알고리듬은 근본적으로 다른 추천을 한다. 아마존은 당신이 전에 본 적이 있을 법한 책을 추천하고, 넷플릭스는 본 적 없는 영화를 추천한다. 그런 차이가 나는 데는 사업상의 이유가 있다. 넷플릭스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스트리밍할 때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가입자가 덜 알려진 영화를 보기로 할 때 넷플릭스에 이윤이 더 크게 남는다. 알고리듬이 얼마나 쉬지 않고 패턴을 찾는지를 설명할 때 컴퓨터 과학자들이 하는 유명한 말이 있다. 데이터를 고문해서 알고 있는 걸 털어놓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비유에는 확인되지 않은 암시가 숨어 있다. 실제 고문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데이터 역시 취조하는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96)

많은 페이스북 사용자들이(믿을 만한 연구에 따르면 60퍼센트의 사용자들이) 페이스북에 알고리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도 달라질 일은 별로 없다. 페이스북의 알고리듬은 베일에 싸인 존재다. (…) 페이스북의 알고리듬에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타당해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나 크고 복잡해져서 이해 불가한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알고리듬은 10만 개가 넘는 ‘시그널’을 사용해서 사용자가 무엇을 볼지를 결정한다. 어떤 시그널들은 페이스북 사용자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어떤 것들은 사용자의 특정 습관이나 그 친구들의 습관을 반영한다. 어쩌면 페이스북조차도 그 복잡한 알고리듬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6000만 줄이 넘는 페이스북의 코드는, 엔지니어들이 계속해서 코드를 더해온 결과 이제는 해독이 불가능한 고대 문서처럼 되어버렸다(이것은 페이스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넬 대학교의 컴퓨터 과학자 존 클라인버그는 공저한 글에서, “우리는 어쩌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기계를 만들었을 수 있다……. 깊이 들어가보면 우리는 컴퓨터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이 그 기계가 가진 불가해성의 본질이다.”라고 썼다. 충격적인 점은 이 글에서 말하는 “우리”가 그 코드를 만든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100)

페이스북은 실제 실험의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으면서도 실험 사실을 자랑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그중에는 페이스북의 실험실 밖으로 유출된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 감정도 전염 가능한지를 실험으로 확인하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실험을 위해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의 정신 상태를 조종해보기로 했다. 한 집단의 사용자들에게는 뉴스피드에 등장하는 포스트에서 긍정적인 단어들을 빼버렸고, 다른 집단에게는 부정적인 단어들을 빼버렸다. 페이스북은 각 집단이, 편집된 포스트에 드러난 감정을 반영하는 포스트를 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실험으로 페이스북은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지만, 페이스북 입장에서는 특이한 실험이 아니었다. 데이터과학팀의 멤버 하나는 “팀원 중 아무라도 테스트를 할 수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려는 시도를 늘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102)

책을 팔아서 큰 돈을 벌겠다는 망상은 지식인들이나 할 것 같지만, 베이조스는 책을 사랑하는 지식인이 아니다. 간혹 큰 감동을 받았다며 읽은 책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베이조스는 책이 가진 문학적·정치적 파워에 사로잡힌 적이 없었다. 그는 큰돈을 벌게 해준 책이라는 물건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책을 손에 들고 읽어야 할 때면 언짢아진다. 책은 별로 편리한 물건이 아니다.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아차, 하는 순간에 책이 덮여서 어디를 읽고 있었는지 다시 찾아야 한다.”(107~108)

제프 베이조스는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직후에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사는 기자, 디자이너, 엔지니어를 많이 고용할 수 있지만, 편집자는 안 된다. 이 지시는 나중에 완화되기는 했지만, 그는 편집의 가치를 믿지 않는다. 그런 편견은 베이조스가 출판계와 전쟁을 벌이면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뉴욕타임스 매거진》의 기사에 따르면 베이조스는 《워싱턴포스트》 기사의 문장에서 모음을 빼보는 실험을 해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139)


목차

서문
1부 생각을 독점하는 기업들

1 실리콘밸리 문화의 기원

2 구글이 바라보는 역사

3 페이스북이 벌이는 자유의지와의 전쟁

4 지식의 파괴자, 아마존

5 거대한 게이트키퍼

6 테크 기업의 밀실 거래

 

2부 생각을 빼앗긴 세계

7바이럴 전염병

8 저자의 죽음
3부 생각의 회복

9 데이터의 수호천사

10 가공되지 않은 생각

11 종이의 반격
감사의 말

찾아보기
옮긴이 후기


편집자 리뷰

전통적인 미디어와 첨단 미디어를 두루 경험한 저자가 쓴
근본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균형 잡힌 비판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인 프랭클린 포어는 이러한 변화를 자료를 통해 접했을 뿐 아니라, 직접 가까이에서 경험한 바 있다. 포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다양한 미디어들, 웹사이트들을 출범시키고 시애틀 근처에 거대한 캠퍼스를 만들었던 시기에 마이크로소프트의 교양잡지 《슬레이트》에서 저널리스트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또 그 후에 《뉴리퍼블릭》에서 기자로 일을 했던 포어는 페이스북 공동창업자가 그 잡지를 인수한 후 다시 총괄 에디터로 일했다. 전통적인 미디어와, 새로운 미디어로 탈바꿈해보려는 미디어와 테크 기업이 출범시킨 최첨단 미디어를 오가며 경력을 쌓았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 저널리즘을 처음 만들어가는 건 신나는 일이었다. 독자들은 우리 매체를 컴퓨터 화면을 통해 소비했고, 이는 새로운 스타일의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스타일은 뭘까? 더 이상 우편 배달이나 인쇄기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발행주기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 하루 한 번? 한 시간마다 한 번? 글쓰기의 모든 형식을 우리가 새롭게 규정하면 될 것처럼 느껴졌다. (……) 마이크로소프트는 스스로를 최첨단 미디어 기업으로 재정의하려 했지만, 이를 위한 노력은 어설펐고 비용이 많이 들었다. 특히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내는 실수를 범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뒤를 이은 페이스북, 구글, 애플 같은 기업들은 이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 기업들은 방법을 다르게 적용함으로써 마이크로소프트를 앞서 나갔다. 작가나 편집자를 고용하지 않고, 거의 아무것도 직접 소유하지 않고서 미디어를 점령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방법이었다.(17~18)

그리고 2014년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으로 《뉴리퍼블릭》을 떠나게 되었다.

내가 독점 기업을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은 좋지 않은 시점에 《뉴리퍼블릭》의 편집장으로 재직했기 때문이었다. 100년의 역사 동안 《뉴리퍼블릭》에는 한 번도 CEO가 없었다. 공익을 위한 책무 또는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잡지사를 경영했던 사주들이 있었을 뿐이다(흑자를 낸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그걸 축하하기 위해서 피자 파티를 한 번 열었다가 그 파티 때문에 적자가 났다.). 하지만 《뉴리퍼블릭》의 새로운 사주이자 나의 보스인 크리스 휴스는 흑자를 내기를 원했다. 그는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업 감각이 없으며, 그런 감각을 가진 사람을 데려오려면 그에 걸맞은 솔깃할 만한 직함이 있어야 한다고 대놓고 이야기했다.
CEO의 C는 ‘chief’ 즉, 수장을 의미하고, 이는 편집장을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암시한다. 내게는 잡지사의 조직 구조 변화가 불안하게 느껴졌다(CEO가 생기기 전까지 나는 크리스에게 직접 보고하면 되었다.). 게다가 그 CEO가 취임한 후 편집장인 나를 만나기까지 2주나 걸렸다는 사실도 좋은 출발로 보이지 않았다. 물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없지 않았다. 나는 《뉴리퍼블릭》이 대대로 위치했던 워싱턴에서 일했고, 그는 잡지사의 경영 파트가 있는 뉴욕에서 일했다. 나는 그가 나를 만나지 않는 것은 도시 간의 먼 거리 때문이라고 믿고, 새롭게 바뀐 조직 구조 내에서도 잘 해내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CEO를 만난 후에 내가 가졌던 확신은 사라졌다. 그의 이름은 가이 비드라로, 다양한 스타트업에서 일했고, 그런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운동용 스마트워치 핏빗을 손목에 차고 각진 안경을 끼고 짧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뉴리퍼블릭》에 오기 직전에 그는 야후에서 근무했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나는 완전히 다른 행성에 발을 디딘 느낌이었다. 나는 방에 놓인 낮은 가죽의자에 앉으면서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가벼운 대화를 바라며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에 수긍할 자세로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내가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은 그의 호감을 사고 내가 상업적인 측면에도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는 철재와 오동나무를 섞어 만든 자신의 책상 뒤에서 일어나더니 매직펜을 집어 들고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로 걸어갔다. 그는 “내 생각은 이래요.”라고 말하면서 잡지사의 편집 조직을 새롭게 만들 계획을 그리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화살표와 원이 잔뜩 그려졌다. 하지만 나는 그가 말하려는 게 뭔지 깨달았다. 비드라는 《뉴리퍼블릭》을 스타트업 정신을 갖춘 테크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싶은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잡지사 내에서 나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진 전통주의자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나는 다 읽은 《뉴리퍼블릭》을 내 방 문 아래로 밀어넣어주셨던 아버지 덕분에 《뉴리퍼블릭》의 독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종종 했다. 그리고 그때는 지난 100년 동안 발행된 《뉴리퍼블릭》에서 기사를 골라 선집을 만드는 작업을 막 끝낸 상황이었다. 그런 평판 때문에 그는 내가 수익을 내는 일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 나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인상을 강화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잡지의 표지 기사들을 정하는 과정에서 재빨리 아마존에 대한 글을 하나 썼다.
그때는 2014년 가을이었고, 당시 아마존과 아셰트 출판사 사이의 계약 협상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어차피 독점 기업이 과점 기업과 싸우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어느 쪽에도 동정심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그 싸움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느낄 만한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아셰트 출판사에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서 아셰트에서 책을 출간한 저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저자들이 수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 산물인 책이 시장에 도달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자신들이 가진 막강한 힘을 이용해서 책의 배달을 늦추거나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주제를 가진 예전에 나온 다른 책들을 권하는 등 다양한 보복 방법을 동원했다. 저자들이 자신도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당한 상황에만 공감하면 안 되지만, 나는 아셰트 출판사에서 책을 낸 적이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아마존이 판매를 막은 책의 저자들과 연대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내가 쓴 기사는 시위대의 구호 같은 제목을 달고 등장했다. 《뉴리퍼블릭》의 표지에는 ‘아마존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라는 제목이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나는 그 글에서 정부가 왜 아마존을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제재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내 주장에 반응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 기사는 내 머리에서 금방 잊혀졌다. 다른 쪽에서 일이 터졌기 때문이다. 잡지사에서 살아남으려는 노력이 한계에 부딪치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언론사 기자들로부터 내가 곧 해고될 거라는 소식이 사실인지 확인해달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불편할 질문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여쭤봐야 해서…….”
그 난감한 시점에 아마존이 《뉴리퍼블릭》에 불이익을 주기로 결정했다. 잡지사의 광고팀에서 아마존으로부터 받은 메시지에 따르면, 아마존은 자기들이 만든 정치 코미디 「알파하우스」의 광고를 《뉴리퍼블릭》에서 빼겠다고 했다. 그 편지는 아마존의 의도를 전혀 숨기지 않았다. “아마존에 관한 표지 기사를 검토한 결과, 아마존은 현재 《뉴리퍼블릭》에 게재 중인 「알파하우스」 광고를 종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메시지를 수신했는지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메시지 끝에는 보낸 이가 “아마존 팀”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크리스 휴스에게 광고를 취소한 건을 두고 아마존과 일전을 벌일지 상의했지만, 그는 잠자코 있으라는 짧은 메시지만 보냈다. 불행히도 이미 나는 한 친구에게 아마존이 보낸 메시지를 포워딩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친구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내게 묻지도 않고 그 메시지를 《뉴욕타임스》에 포워딩해버렸다. 내가 그 논란을 조용히 덮기도 전에 《뉴욕타임스》 기자 하나가 크리스에게 그게 사실인지 묻는 이메일을 보냈다. 내가 자기 명령을 무시했다는 생각으로 크리스가 잔뜩 화가 나 있는 동안 나는 미국을 가로질러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환장할 만큼 느린 기내 와이파이로 내 친구에게 그 문제를 제발 덮어달라고 사정하는 이메일을 열심히 쓰고 있었다. 내 목에 칼날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153~157)

물론 포어가 기술에 대해 맹목적인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테크 기업을 가까이서 목격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균형 잡힌 비판을 하고 있다. 저자의 경험을 고려하면 책의 냉철하고 균형 잡히고 현실적인 비판과 대안들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동시에, 깊은 사유를 통해 개인의 경험에서 보편적인 과제를 추출해, 여러 객관적인 자료들을 직조해 설득력있게 논증해내는 이 정교하면서도 효율적인 방식은, 다른 어떤 뉴미디어도 따라올 수 없는 책이라는 전통 매체 고유의 가치임을 다시 한 번 수긍하게 된다.

이 책이 분노로 쓰였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내가 가진 분노를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테크 기업들은 소중한 어떤 것을 파괴하고 있다. 바로 ‘사색 가능성’이다. 그들은 우리가 끊임없이 뭔가를 보고 있고, 늘 주의 산만한 상태로 사는 세상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수집한 데이터를 사용해서 우리가 지닌 정신의 초상화를 만들었고, 이를 이용해 대중의 행동을(그리고 점차 개인의 행동을) 눈에 띄지 않게 어딘가로 유도해서 돈을 벌고 있다. 그리고 지적인 저작물을 공급해서 사고를 자극하고 민주주의를 이끄는 미디어나 출판사 같은 기관들의 직업적 원칙을 훼손했다. 이 기관들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자 우리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기도 한, 관심과 주의를 함부로 다루었다.(20)

우리 문화에는 이런 작은 귀퉁이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충동이 존재한다. 남들과 어울려 네트워킹하고, 협업하고, 창조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사상가들이 사회에서 승자가 될 사람들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그룹으로 모여 공부하고 팀 프로젝트를 해내야 한다. 일터에서는 사무실 내의 벽을 허물고, 조직은 부문 단위로 함께 일한다. 또한 거대 테크 기업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크라우드에 동참하게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검색어를 보여주고, 그들이 가진 알고리듬은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읽는 것과 동일한 기사, 트윗, 포스팅을 읽으라고 추천한다.
대화가 지닌 창조적인 힘, 주위 사람들로부터 겸손하게 배울 때 얻게 되는 지적 잠재력, 그리고 집단이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들 중 그 어느 것도 사색이나 혼자만의 시간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그런 시간이 있어야 사람들은 비로소 독자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291~292)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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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포어

《뉴리퍼블릭》의 에디터를 역임했다. 온라인 매체인 《슬레이트》를 비롯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도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는 전 세계 27개국어로 번역되었으며, 전미유대인도서상을 수상했다.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 넌픽션 작가 조슈아 포어의 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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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옮김

미국에서 현대미술사를 공부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미디어와 콘텐츠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쓰고, 번역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 『내 사랑 모드』,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아날로그의 반격』(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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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 옮김

학교에서는 말을 배웠다. 회사에서는 알리기와 연결하기를 배웠다. 책에서는 세상과 사람을 배운다.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지만, 여행 때 작성하는 신고서 직업란에는 번역가와 편집자 둘 중 하나를 쓴다. 《아날로그의 반격》을 공동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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