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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사수 대작전


첨부파일


서지 정보

황두진

출판사: 반비

발행일: 2019년 10월 25일

ISBN: 97-91189-19-8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28x188 · 232쪽

가격: 16,000원

분야 문화, 대중문화, 에세이, 정치, 사회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9년 12월 18일 | ISBN 979-11-90403-94-8 | 가격 11,200원


책소개

우리 동네 공원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나라가 팔아버린 공원을 2년 반만에 되찾은 사연.

그 과정을 탐정처럼 치밀하게 파고든 한 건축가의 기록.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리고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서촌의 작은 공원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이 책 속엔 그 공원을 지키기 위해 뜨겁게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쉽게 망쳐지는 작고 귀한 것들을 지키려는 마음이 모여 세상은 모래알만큼씩 더 살 만한 곳이 된다. 소중한 것들이 부디 사라지지 말고, 곁에 오래도록 머물러줬으면. —임이랑(디어클라우드, 『아무튼, 식물』 저자)

황두진 소장님이 동네 공원을 구하기 위해 ‘책 듣는 밤’ 행사를 하자고 제안하셨을 때 흔쾌히 응했지만, 하기 전까지는 ‘지키면 좋겠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날의 경험으로 그 공원은 ‘내 공원’이 되었다. 겨우 한 뼘의 공간. 그곳에 얽힌 깊고 내밀한 역사를 들으며, 차근차근 파고들고 행동한 이에게 그 공원의 의미는 얼마나 각별할까 생각한다. 공부하는 사람의 싸움은 이런 것이구나, 각별하게 배운다. —박사(칼럼니스트, 『가꾼다는 것』 저자)

‘진정성’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도 믿지도 않는 나는, 정치적 목적이 없는 사람만이 진영을 아우르며 상대방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통의동 마을마당 구하기는 주민이자 건축가인 한 개인의 열성으로 시작되었으나, 결국은 다양한 시민으로부터 물심양면의 참여를 이끌어낸 덕분에 ‘지속가능한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 책이 많이 읽혀서, 공공재인 공원이 없어질 뻔한 위기가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행여 생긴다 해도 개인들의 희생을 통한 것이 아닌 시스템 자체 내의 자정적 힘에 의해 바로잡힐 수 있기를 바란다.―김정윤(오피스박김 대표, 하버드 디자인대학원 조경학과 교수)

 

동네 공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동네마다 공원은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노인들이 길을 걷다 잠시 쉬어가는 쉼터가 되기도 하는 공원. 하지만 시민들은 공원을 이용하면서도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다. 공원의 가치는 당장의 실용이 아닌 손에 잡히지 않는 여유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생기거나 사라져야만 비로소 공원의 존재와 그 소중함을 느낀다.  서울숲이나 올림픽공원 같은 대형공원도 중요하지만 동네 곳곳에 자리 잡은 작은 공원은 도심 속에 유휴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도심 속 작은 공원들 중 많은 곳이 사유지이며 2020년 7월 이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보통 우리 주변의 공원은 ‘도시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법으로 지정된 땅을 구입해 만들어진 것이다. 공원부지로 지정된 땅에는 국공유지뿐만 아니라 사유지도 있기 때문에 지정된 땅을 매입해서 ‘집행’해야만 완전한 공원이 된다. 온전히 국공유지로 매입되지 않는다면 전국의 4421곳에 달하는 도시공원이 2020년 7월 1일부로 도시공원 자격에서 해지된다. 이를 ‘도시공원일몰제’라고 하는데 공원이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된 후 일정기간이 지나도록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때 자동으로 지정이 해제되는 제도이다. 도시공원은 도시를 구성하는 필수요소인 도로, 철도, 학교와 함께 ‘도시계획시설’에 포함되어 있지만 도시계획시설을 조성하기 위한 전체 예산 중에 주로 후순위로 밀리다 보니 매입이 장기간 미뤄졌던 것이다.

이미 2015년부터 장기간 공원이 조성되지 못한 공원 부지는 공원 자격이 실효되어 왔다. 그리고 ‘도시공원일몰제’ 종료를 코앞에 둔 현재도 곳곳에서 토지주들이 공원의 출입을 금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서울의 한남공원, 대구의 범어공원, 청주의 구룡공원 등에서 토지주와 공원을 구하기 위한 나선 시민, 환경단체 등이 갈등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언제든 공원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실제로 2010년과 2016년, 서울의 한복판인 경복궁 옆 서촌에서 일어난 전조 사례가 있다.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7-3번지에 위치한 통의동 마을마당이란 공원은 두 차례나 없어질 뻔했다. 허약한 법적 지위에 더해 사람들이 공원이라는 공간을 언제나 개발될 수 있는 땅, 개발을 기다리는 땅으로 의식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책은 한 무리의 시민들이 공원을 지켜낸 과정의 기록이다. 기본적으로는 황두진이라는 한 건축가 개인의 기록이지만 공사모(공원을 사랑하는 시민 모임)의 기록이고 나아가 한국 사회의 기록이기도 하다. 2020년이 되면 공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훨씬 더 거세질 것이다. 도시공원일몰제의 종료 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공원을 둘러싼 제도적․사회적 인식의 허점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이제라도 문제의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 책에 나오는 ‘통의동 마을마당 사수 대작전’이 중요한 참조점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공원을 지켜낸 과정의 기록자가 되고자 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나의 기록이지만, 공사모의 기록이고, 나아가 당시 한국 사회의 기록이기도 하다. -17

이 이야기를 하면 누가 공감할까? “당신 집 옆 공원을 지키는데 왜 내가 나서야 합니까?” 하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반대로 내가 숨어 있으면 “당신도 가만히 있으면서 어떻게 남들이 뭔가 하기를 기대합니까?”라는 반응이 올 것도 뻔했다. -36

결국 이 공원뿐만 아니라 모든 공원을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었다. 누가 동참하고 안 하고, 공론화 되고 안 되고 또한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널리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이었다. -36

2017년 3월 24일 금요일. 어린이들 한 무리가 찾아왔다. 인솔 교사로 짐작되는 분이 동행한 것으로 보아 인근의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온 것 같았다. (중략) 어린이들이 통의동 마을마당에서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에도 봄이 온 것 같았다. 이 공원이 없어지면 이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108

 

2018년 4월 5일 서울시는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실효대응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도시공원일몰제에 해당하는 도시공원 중 사유지 40.3제곱킬로미터 전체를 매입하겠다는, 실로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통의동 마을마당의 갖는 상징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133

건물은 필요해서 짓지만 공원은 만들어놓아야, 혹은 없어진 후에야 왜 필요한지를 깨닫는다. 그 생각의 차이가 사회의 수준이다. 즉 공원의 가치는 당장의 실용보다는 손에 잡히지 않는 여유다. -188

도대체 ‘공원의 이용’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공원은 공연장처럼 단일 목적으로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닙니다. 걷거나 운동을 하러 오는 사람도 있고 책을 읽으러 오는 사람도 있고 당연히 그냥 멍 때리러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몇 시간을 보내는 사람, 그냥 쓱 지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적어서 그 순간 나의 기쁨이나 슬픔에 잠길 수 있어서 더 좋은 곳이 바로 공원입니다. 즉 공원은 삶의 다양성을 너그럽게 품어주는 보자기 같은 장소입니다. -201

이제 소유의 주체만으로 공원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논의의 핵심은 점점 더 사회적 합의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결국 공원이 사회에 존재하는 방식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이 커지고, 이를 법과 제도가 지원해야 공원의 미래가 있다. 공원지정지가 송두리째 사라질 수도 있는 공원일몰제 시행이 불과 1년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공원을 살리자는 논의의 본격적인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11

 

공원을 지키기 위해 뜨겁고 재미있게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

2010년, 통의동 동네 주민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통의동 마을마당에 경찰이 경호 시설을 짓는다는 내용이었다. 동네 주민들은 ‘어떻게 시민들이 애용하는 공원을 경찰이 빼앗을 수 있냐’고 분노했다. 주민들이 모여 공사모를 만들고 민원을 넣고 사람들에게 팸플릿을 돌리고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이때는 비교적 쉽게 문제가 해결되었다. 소유권을 가지고 있던 청와대 측에서 모든 계획을 무효화한 것이다. 동네 주민들은 이때를 ‘제1차 공원대란’ 시기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승리한 듯한 기쁨을 맛보았고 동네에는 무언가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사람들은 더욱더 애정을 가지고 공원을 돌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2016년, 다시 동네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청와대가 공원을 민간인에게 팔았다는 것이었다. 다시 공사모 멤버들이 모였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고 구청과 지역 국회의원 사무실 등을 방문해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스템은 불통이었고 그나마 언론에서 취재를 해주어 자초지종을 알 수 있었다. 청와대가 삼청동의 한 주택을 ‘경호상의 필요’로 취득하면서 매매 대금 대신 통의동 마을마당을 ‘대토’(토지를 맞교환하는 형식)형식으로 민간인에게 제공하려는 것이었다. 동네 주민들은 또다시 싸우기로 결정했다. ‘제2차 공원대란’의 시작이었다.

마침 2차 공원대란 시기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와 맞물려 있었다. 촛불 시위가 시작되면서 사회의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형국이었지만 동네 주민들은 꿋꿋이 행동하기로 했다. 공원에 현수막을 내걸었고 시스템을 하나하나 절차대로 두드리는 방식으로 싸움을 시작했다. 다시 한 번 국회의원 사무실을 찾고, 구청장을 만났다. 시민단체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스템은 여전히 불통이었다. 공사모 회원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통의동 마을마당은 소유주가 민간인으로 바뀌고 말았다. 주민들은 소셜네트워크와 언론을 통해 공원 구하기에 나섰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공원대란의 진상을 알렸다. 신문에 기고문도 실었다.

결국 일은 광화문광장에 나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직접 만나 공원 문제를 전달하면서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서울시장으로부터 공원을 되찾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공사모 회원들은 더욱더 강도를 높여 활동했다. 공사모 회원들은 ‘촛불공원’이라는 행사를 기획해 공원을 촛불로 아름답게 꾸며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마침 촛불 시위가 한창이었고 통의동 마을마당은 시위를 마친 사람들이 내려오던 통로에 위치해 있었다. 그들에게 응원을 받고 서명도 받았다. 법조인에게서 법률 자문을 받기도 하고 감사원, 서울시의회, 구의회 등에 탄원서도 넣었다. 결국 이 싸움은 2019년 2월 27일이 되어 등기부 등본에 다시 “소유자 서울특별시”로 바뀌고서야 마무리되었다. 싸움이 시작된 지 2년 반만의 일이었다.

다들 기도 안 찬다는 반응이었다. “청와대가 공원을 팔아먹었다고?” 자기가 어디에 살건, 어디서 일하건 이 동네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반응이 비슷했다. -33

이런 일은 한 마디로 ‘절망의 일상화’가 기본이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뭔가 시도한다. 주변의 조언도 풍성하다. 그래, 한번 해보자. 다들 뭔지는 잘 몰라도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달려든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초라하다. (중략) 그냥 체념해버리면 일은 거기서 끝난다. 그런데 ‘원래 이런 것이겠거니.’ 하고 그다음 일을 또 모색하다 보면 뭔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일은 의외로 화끈한 성격의 소유자보다는 조용조용하고 끈기 있는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는 것 같다. 타고난 성격이 그렇지 않으면 일부러라도 개조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제 풀에 꺼지지 않을 테니까. -54~55

나는 서명록 한 장 한 장을 꽃잎에 비유하여 ‘송이’라 불렀다. 한 송이에는 약 20개의 서명이 담겼다. 무인 서명대를 비치한 지 약 두 달만인 2017년 2월 27일, 서명한 사람의 숫자가 1000명을 넘어갔다. 최종적으로는 온라인 서명까지 포함해서 약 2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이 공원을 살리기 위한 서명 운동에 동참했다. -69~70

2019년 2월 27일. 등기부 등본을 확인했다. 통의동 마을마당은 다시 서울시의 소유가 되었다. 제2차 공원대란이 드디어 종료되었다.

‘모든 사건은 소문으로 시작해서 한 장의 서류로 끝난다.’ -137


목차

추천의 말

지도

들어가는 글

 

1부. 동네 공원 구하기

1장. 통의동 마을마당이 팔리다

시드니에서 받은 문자 한 통

소문의 진상

촛불

6년 전

제1차 공원대란

정치인이라는 존재

절망의 일상화

또 하나의 시스템, 시민단체

장기전의 조짐

시민들의 응원

광화문광장

탄원서

 

2장. 통의동 마을마당을 되찾다

호랑이 굴 속으로

공원 데리고 놀기

거동 수상자

4・19혁명

2017년 3월 12일

엉뚱한 상상

봄기운

법조인의 도움

반전의 징후

글의 힘

의자의 여행

다시, 시스템

제2차 공원대란의 종료

 

2부. 동네 공원의 어제와 오늘

1장. 장소의 역사

시간의 층위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

건축시공자 마종유

또 다른 우연

통의동 7-3번지와 4・19혁명

통의동 마을마당 조성

 

2장. 동네 공원 수난사

명동공원

수표교공원

질긴 운명의 장소

 

3부. 동네 공원의 미래를 위한 제안

1장. 앞으로의 과제

2장. 통의동 마을마당의 미래

3장. 공원의 이용객

4장. 공원은 시민의 공유지다

5장. ‘민간 소유의 공공 공원’은 불가능한가

 

마치는 글

부록 1. 공사모 회원 명단

부록 2. 언론에 실린 통의동 마을마당

부록 3. 통의동 마을마당 연표


편집자 리뷰

건축가 황두진, 도시 탐정이 되어 공원을 샅샅이 파헤치다

이 기록의 주체는 동네 주민이자 공사모 멤버로서 이 지난한 싸움에 참전한 건축가 황두진이다. 도시 공원의 사회적 가치와 필요에 대한 풍성한 논의와 국정농단 사태와 맞물려 돌아가는 ‘통의동 마을마당 구하기’ 과정의 흥미진진함(?)이야말로 이 책의 일차적인 의미이고 재미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집요하고 치밀한 탐구의 과정이 마치 탐정 소설처럼 펼쳐진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세세하게 글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한 점도 놀랍지만, 이 공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온갖 기록과 서류들을 살펴보고 사람들을 취재하고 인터뷰하는 저자의 열심이 큰 울림을 준다. 건축가로서 탑재한 공간과 장소에 대한 지식과 정보에 더해, 독학자로서 도심 속 공간의 역사를 탐구하고 상상해내는 과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거칠게 작동하는 시스템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용기와 협력을 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문제가 된 이 장소(통의동 7-3, 통의동 마을마당)에 대한 훨씬 더 깊고 넓게 이해하게 되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그 장소에 대한 애착까지 기르게 되는 것이다.

통의동 마을마당 터의 역사는 조선 후기부터 되짚어볼 수 있다. 경복궁이 중건되며 관상감(오늘날의 기상청)이 이 일대로 옮겨졌고 갑오개혁 이후 관상소로 혁파되면서 이곳은 경복궁 근무자들이 영추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대기하던 대루문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후에 이 일대는 매동공립보통학교(오늘날의 매동초등학교) 터였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1896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이 앞을 지났을 것이라 추측되기도 한다. 매동공립보통학교가 이사간 직후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일제강점기 대표적 경성 지도인 ‘대경성부대관’을 보면 통의동 마을마당 자리가 빈 땅으로 표현되어 있다. 어쩌면 그때 공원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이것 또한 추측일 뿐 확인할 길이 없다.

그 와중에 저자는 흥미로운 인물을 발견한다. 바로 마종유라는 사람이다.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에 활동한 건축시공자로서 이화여대 파이퍼홀 등을 시공했고 도시형 한옥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마종유라는 인물이 훗날 통의동 마을마당이 들어선 자리에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곳은 4․19혁명의 가장 치열한 현장이기도 하다. 통의동 마을마당 앞 효자로에서 4․19혁명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인 ‘피의 화요일’이 펼쳐졌다. 2016년과 2017년에 걸쳐 촛불 시위가 같은 장소에서 시민들과 경찰이 대치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을 보며 저자는 ‘한 번 격전지는 영원한 격전지’이며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묻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의 현장이었던 효자로 일대에 이를 기리는 표석이나 장소가 없다. 그래서 저자는 통의동 마을마당을 그러한 역사적 기억을 담아보면 어떨까 제안하기도 한다.

현장에 걸려있던 현수막, 시민들의 귀중한 서명이 담겨 있는 서명록, 포스트잇에 남겨진 시민들의 메시지, 나무에 걸려있던 리본들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 언젠가 이 원본 자료들 또한 한 시대의 공공기록으로서 인정받기를 기대한다. -18

우리는 ‘촛불공원’이란 행사를 가진 적이 있었다. 굳이 촛불 시위와 연결시킬 의도는 아니었으나 공원을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의도를 아름답게 표현해보고 싶었다. (중략) 양초를 설치하기 시작하자 지나가던 사람들도 모여들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준비하는 사이에 점차 해가 지고, 양초에 불을 붙이자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 만들어졌다. 마침 공원 앞 효자로를 지나가던 촛불 시위대도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하며 관심을 갖고 모여들었다. 서명록에도 그야말로 ‘불이 붙었다’. 덕분에 이날의 모습은 수많은 동영상과 사진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타고 널리 퍼져 충실히 기록되었다.   -85

2017년 2월 무렵 포켓몬GO 열풍이 불었다. ‘역세권’에 이어 ‘포세권’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호기심에 앱을 설치해보니 통의동 마을마당에도 포켓몬이 많이 출몰하고 있었다! 즉시 이 사실을 페이스북에 공개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장소에 와서 포켓몬GO를 즐기도록 독려했다. -93

동네에 소문이 돌았다. 검은색 승용차를 탄 누군가가 며칠 전부터 나타나 공원에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까지야 이상한 점이 하나도 없다. 그것이 공원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사람이 서명록을 들춰가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었다. 그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중략) 그에게 다가가서 사진은 왜 찍느냐고 물었다. 그는 거친 눈초리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당신이 알 바 아니니 비키라고……. 아니,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솔직히 두려웠다. -96~97

이 지면을 빌려 통의동 마을마당에 4·19혁명을 기념하는 작은 조형물을 설치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바로 현장에서 4·19정신을 기릴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공화국이 유지되는 한, 그 누구라도 이 공원을 다시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102

건축가인 나는 건물을 보면 ‘이 땅에 몇 번째로 남겨진 인간의 흔적일까’를 궁금해하는 버릇이 있다. 물론 지역에 따른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사람이 오래 살아온 지역, 예를 들어 서울 강북의 구도심, 그중에서도 궁궐 근처라면 최소 5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인간의 개입이 있었을 수 있다. 역사가 더 오래 된 지역인 경주나 부여, 평양 같은 곳의 층위는 감히 헤아릴 엄두도 나지 않는다. -142

마종유는 격동의 시대를 살면서 나름 굵직한 흔적을 많이 남겼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연구되고 마땅히 더 큰 관심과 존경도 받아야 할 사람이다. 그가 살던 곳이 훗날 통의동 마을마당이 되어 두 차례 우여곡절을 겪은 것, 그리고 내가 그 역사적 이웃으로서 이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 모두가 인간이 계획한 일은 아니다. 세상의 인연이란 이처럼 참으로 묘한 것이다. -159~160

명동공원 매각은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된 공원의 운명도 보장된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역시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시스템은 무엇으로도 막기 어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당시 서울시는 그 무렵 벌여놓은 다양한 사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이들 공원을 매각한다고 했다. 시민의 휴식처를 없애가면서 진행된 그 사업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175~176

 

공원 문제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통의동 마을마당은 1996년에 조성되면서 비로소 공원으로서의 역사를 시작한다. 통의동 7-3번지를 위시하여 서울시내 열 군데에 ‘마을마당’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현재도 서울시내의 열 곳 마을마당은 남아 있지만  명동공원이나 수표교공원은 사라졌다. 서울시의 사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매각되었다고 전해진다.

3부에서 저자는 공원의 미래에 관한 몇 가지 제안하면서 우선 공원의 가치가 경제적인 것으로만 환산되지 않음을 언급하고, 사람이 북적이든 인적이 드물어 한갓지든 그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공원의 소유방식에 대해서도 질문한다. 공원이 국공유지라도 안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로 미국 동부 코네티컷주에 위치한 뉴헤이븐공원을 소개한다. 이곳은 예일대와 시청 사이에 자리 잡은 금싸라기 땅이다. 탐내는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여전히 수백 년 동안 잘 유지되고 있는데 그 비결은 소유방식에 있다. 국유지나 시유지가 아닌 사유지로 그 소유권을 5명의 시민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죽으면 나머지 4명이 후임자를 선정한다. 시간이 흘러도 이곳은 시민 모두의 땅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제도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정치가도, 공공 기관도, 어떤 개인도, 기업도 이 공원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 한국의 공원에 공고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방법에 대한 저자 나름의 제안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공원의 위치를 고민하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를, 그래서 공원 문제에 더욱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공원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고 건강하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야말로 저자가 바라는 바이며 이 책의 존재 목적이다.

대체적으로 공원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공원이란 ‘아직 개발이 안 된 빈 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일단 공원으로 쓰는 것은 좋지만 언젠가 여건이 바뀌면 개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공원을 언젠가 들어설 건물과 등가로 보는 듯하다. 이 둘은 과연 같은가. -187

이성호(가명) 씨가 한 제안이 지금도 눈에 밟힌다. 자기는 집도 땅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만약 가족의 이름으로 통의동 마을마당의 일부 지분을 가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했다. 휴일에 자기 아이들을 여기 데려와서 “여기 우리 땅이야. 물론 우리가 혼자 다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허락 없이 누구도 이 땅을 가지고 함부로 할 수 없어. 누구도 다시 이 공원을 없앨 수는 없어.”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현실화되면 지분 소유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191

도대체 ‘공원의 이용’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공원은 공연장처럼 단일 목적으로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닙니다. 걷거나 운동을 하러 오는 사람도 있고 책을 읽으러 오는 사람도 있고 당연히 그냥 멍 때리러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몇 시간을 보내는 사람, 그냥 쓱 지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적어서 그 순간 나의 기쁨이나 슬픔에 잠길 수 있어서 더 좋은 곳이 바로 공원입니다. 즉 공원은 삶의 다양성을 너그럽게 품어주는 보자기 같은 장소입니다. -201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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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 통의동에 있는 목련원에 집과 사무실을 두고 있다. 본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장소와 공간의 역사에 관심이 많고, 미세하게 추적하고 탐구하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통의동 마을마당’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도 이런 개인적인 성향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서울대와 예일대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김종성, 김태수 등의 사무소에서 수련했다. 주요 작업으로 캐슬오브스카이워커스, Won&Won 63.5, 교량보행자시설, 그리고 일련의 무지개떡 건축과 한옥 등이 있다.

현역 건축가이면서고 꾸준한 글쓰기를 병행해왔으며, 저서로는 『황두진: 다공성.구축술.시스템』, 『무지개떡 건축』,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한옥이 돌아왔다』, 『가장 도시적인 삶』 등이 있다. https://ladyx.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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