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 될 때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우리를 낯선 풍경과 이야기, 다른 운명으로 이끄는 여행의 경이
이처럼 지적이고 매혹적인 여행기라니! 이건 아일랜드 여행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찾아 나선 모험일지도 모르겠다. 아일랜드의 자연과 역사와 인물에 익숙해졌을 무렵, 리베카 솔닛은 여행이라는 것, 떠돈다는 것, 이주한다는 것의 의미 속으로 더 깊이 ‘걸어’ 들어간다. 움직이는 한, 세상과의 대화는 계속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으므로. 그러므로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김연수(소설가)
솔닛의 글은 아일랜드에 대한 이야기이자 세계사, 영문학, 여행에 관한 최고의 문장이다. 읽기로서의 여행, 여행하기 위한 읽기의 정석이다. 이 시대, ‘집’에서 여행하고 싶다면 이 책 이상이 없다. 여러 번 읽고 필사할 책이 있다는 기쁨. 역시 솔닛은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정희진(여성학 연구자)
리베카 솔닛의 청년기 걸작!
솔닛만의 감각과 사유로 쓰인 본격 여행기
‘맨스플레인’이란 단어로 전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작가이자 《유튼리더》가 꼽은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 깊은 사유와 매혹적인 글쓰기로 한국에서도 많은 독자의 지지를 받고 있는 리베카 솔닛의 청년기 걸작 『마음의 발걸음』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솔닛만이 쓸 수 있는 방식으로 쓰인 아일랜드 여행기다. 솔닛은 어머니 쪽의 아일랜드 혈통 덕에 아일랜드 국적을 얻게 되고, 새로 생긴 여권을 “조상의 나라로 눈앞에 나타난 낯선 남의 나라”에서 정체성과 기억, 풍경 같은 개념을 탐구해볼 기회로 삼는다. 이 탐색의 여정은 아일랜드(특히 아일랜드 서해안 지역)를 두 발로 밟아가는 여행과 아일랜드의 역사와 문학을 읽고 연구해 책을 써나가는 여행, 이렇게 두 차원의 여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길, 헤맴, 모험을 품고 있는 여행은 항상 솔닛의 한 테마였지만, 이 책은 낯선 곳에서 다른 이야기와 다른 자아를 상상할 수 있는 뛰어난 여행자로서 그의 면모가 더 폭넓게 펼쳐지는, 한 나라에 관한 본격적 여행기다.
이 책은 리베카 솔닛의 초기 주저이자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걷기의 인문학』의 전작으로, 내밀한 경험과 내면의 풍경을 포함한 수많은 재료들을 밀도 높게 엮어내며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는 솔닛의 인문학적 에세이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이후 솔닛을 세계 지성으로 자리매김해주는 작업들을 예비하는 지적 야심과 비전이 돋보이는 저작인 것이다. 독립 연구자라는 정체성을 30년 가까이 지켜온 솔닛은 자신의 비주류성을 지적 자산으로 바꿔냈다. 『마음의 발걸음』은 청년 솔닛이 이러한 지적 자산을 어떻게 일구어냈는지 보여주는 더없이 적절한 사례다. 우리는 이 책에서 솔닛이 ‘유럽 속의 제3세계’라는, 아일랜드라는 특이한 나라를 배경 삼아 유럽 중심의 세계사에, 강단철학에, 문학사의 정전들에 어떻게 도전하고 그 권위를 유려하게 무너뜨리는지 목격한다.
한편 서구(Western) 중심 역사와 철학, 정치, 문학사에 관한 솔닛의 급진적이면서도 독특한 비판적 관점은 주로 미국 ‘서부(west)’라는 주제에 대한 고유한 입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서부는 『걷기의 인문학』을 비롯한 이후의 주요 저작들에 반복적으로 중요하게 등장하는 테마다. 『마음의 발걸음』에서 솔닛은 자신에게 서부가 어떤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자연적, 상징적 장소인지 아일랜드, 또는 멕시코, 콩고, 페루 푸투마요, 또는 미국, 유럽과 마주 놓으며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이로써 동부 중심의 미국사와 유럽 중심의 세계사에 동시에 문제 제기한다. 이 책은 장소들(친숙한 장소와 낯선 장소) 간의 상호작용이 솔닛의 글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우리에겐 어떤 가능성을 제공하는지 선명히 보여줄 것이다.
타인의 문화를 탐색하는 균형 감각
우울과 배척의 시대에 집에서 여행하기를 위한 책
이 책에서 우리는 청년기 솔닛의 날카롭고 감각적인 글쓰기를 완연히 느낄 수 있다. ‘프로패셔널 아이리시맨’에게 맨스플레인을 당하고, 젊은 여성으로서 때로 폭력과 추행의 위험에 노출되는 경험은 시니컬한 유머로, 때론 “묘한 신경질”로 곳곳에 깔려 있어 읽기의 긴장감을 낳는다. 이는 동시에 독자에게 “솔닛의 육체적 현존”을 느끼게 하며, 내면과 외부, 몸의 자리와 상상의 자리, 정치와 정신이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유럽 중심성과 같은 거대한 문제에 대한 비판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에피파니와도 같은 통찰의 순간이 수시로 교차하고, 그럴수록 솔닛의 목소리에는 더 깊은 울림이 실린다. 때때로 뒤따르는 위험에도 솔닛은 온몸으로의 경험, 실제적 마주함을 포기하지 않으며, 기록된/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대화의 능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마음의 발걸음』의 솔닛은 타인의 문화에 다가가 그것을 탐색하고 관계 맺는 탁월하고 훌륭한 모델을 보여준다. 혈통을 상징하는 족보와 문장 기념품을 사러 아일랜드로 몰려드는 수많은 (아일랜드계) 관광객들과 관광객을 만나면 아일랜드계냐고 꼭 한번 물어봐주는 현지 주민들을 정형화하지도 미화하지도 않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그 예시일 수 있다. 좀 더 추상적인 차원에서는 20세기 말 유행한 미국발 뉴에이지가 “정신으로부터 정치를 격리”하고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일랜드인 등 서로 다른 “문화들 사이의 중대한 차이를 외면”한다고 지적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처럼 먼 곳, 낯선 세계로 나아가기 어려워진 때, 그것이 우울과 혐오, 배척을 부추기고 있는 때에 집에서 여행하기를 위한 책이 되어줄 것이다.
초판 서문
재판 서문
1장 동굴
2장 침입의 서
3장 노아의 ABC
4장 나비 수집가
5장 걸인의 길
6장 길 위에 내려진 닻
7장 떠도는 암초들
8장 신앙고백
9장 깃털 1파운드가 더 무거울까
10장 총알 1파운드가 더 무거운가
11장 혈액 순환
12장 암초 수집
13장 새와 나무 사이의 전쟁
14장 기러기 사냥
15장 은총
16장 트래블러
17장 녹색의 방
감사의 말
역자 후기
주
자신의 정체성의 원천지인 아일랜드를 걸으면서 느끼는 머릿속의 변화가 한 걸음 걸음마다 내 머릿속에도 동일하게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매혹적인 여행지라는 느낌보다는 내 안의 무언가를 찾는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아일랜드가 떠오르게 하는 여행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