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와디의 아이들

캐서린 부, 강수정

출판사 반비 | 발행일 2013년 8월 26일 | ISBN 978-89-837-1615-6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6x218 · 388쪽 | 가격 16,000원

수상/추천: 전미도서상

책소개

찰스 디킨스, 조지 오웰을 잇는 도시 빈곤 르포르타주의 새로운 고전!

탁월하다. 인도가 경험하고 있는 풍요로운 경제의 일원이 되지 못한 도시 하층민의 슬픔과 기쁨, 걱정과 열정, 그 불안한 삶을 실화를 바탕으로 아름답게 기술했다. 이 책은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흥분과 분노를 안겨주고, 영감을 일깨우는 동시에 독자를 뜨겁게 선동한다. —아마르티아 센(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센코노믹스』)

찰스 디킨스의 소설 같지만, 도시의 슬럼에 실제로 살고 있는 수억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겪어내는 도전에 대한 생생한 묘사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필독서다. 전례 없이 강렬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언어로 상상되고 이해된 뭄바이 슬럼. —살만 루슈디(『한밤의 아이들)

지금껏 읽었던 경제적 불평등을 다룬 책 중 가장 강력한 고발서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노동의 배신』)

 

전미도서상에 빛나는, 2012 영미권 논픽션 최대의 화제작!
도시의 빈곤과 불행, 불평등을 정교하게 담아낸 르포르타주의 걸작!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이자 그만큼 불평등도 심각한 도시, 뭄바이. 뭄바이의 화려한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공항과 특급 호텔들의 그림자 뒤에는, 그 성장과 발전에서 비껴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동네 꼬마들도 “장미 꽃밭 사이의 똥 같은 존재”라고 자조하는 이 거대한 빈민촌 중의 한 마을 ‘안나와디’로, 퓰리처상 수상 작가 캐서린 부가 뛰어들었다.
저자는 여러 슬럼을 관찰한 끝에, 안나와디를 집중 취재(immersion journalism)하기로 결심하고 2007년 1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약 4년 간 안나와디에 직접 머물면서 사람들을 만났다. 여러 인물들을 수십 차례 인터뷰하고, 3000건이 넘는 공공 기록을 조사하며 도시 슬럼가의 비통한 현실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워싱턴포스트>와 <뉴요커>의 기자로서 20년 간 갈고닦은 엄격한 취재 원칙과 타고난 문학적 감성을 결합하여, 안나와디 사람들의 삶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직조해냈다. 매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비참한 삶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과 인간성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이른바 ‘팩트’라는 점은 감동과 놀라움을 동시에 안긴다.
저자는 안나와디 빈민촌에서 가난과 불행의 인간적인 초상화를 그리는 동시에, 그것을 통해 세계화가 양산한 구조적 빈곤과 불평등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지 드러내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작품의 무대인 뭄바이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만큼 발전하고, 그만큼 소외된 사람들이 사는 세계의 어느 도시이든 또 다른 뭄바이가 될 수 있다. 19세기에 찰스 디킨스가 묘사했고, 20세기에 조지 오웰이 묘사했듯, 21세기에 캐서린 부는 뭄바이라는 가장 상징적인 공간을 통해 도시에 내재한 빈곤과 불평등을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가장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편집자 리뷰

1. 현대 도시의 빈곤과 그 메커니즘에 대한 정교하고 정확한 기록!

현대 사회에서 도시는 자본주의적 성장과 발전이 가장 집약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자, 그 폐해와 인간 소외 또한 가장 적나라하게 간직한 공간이다. 고속 성장을 기록하던 지난 시절 우리의 ‘달동네’가 그랬듯, 현란한 광고와 마천루의 뒤에는 발전의 소용돌이에 하릴없이 휘둘릴 뿐, 그 열매는 손에 쥘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인도의 뭄바이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그런 이중성이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곳이다. 2000만 명의 인구를 거느린 메가 시티 뭄바이는, 그 한켠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빈민촌을 형성하고 있다. 그 안에는 토착민과 이주민, 무슬림과 힌두교도 간의 갈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전통과 현대 사이에 낀 여성들의 젠더 갈등도 나날이 심각해지는 데다, 고속 성장 시대 특유의 한탕주의와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 그 혼란의 와중에서 가난한 이들은 돈벌이의 기회, 인생 역전의 기회, 혹은 최소한의 생존의 기회를 포착하려고 고군분투한다. 저자는 뭄바이의 빈민촌 ‘안나와디’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이 모든 문제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다. 신분 승상을 위해 극우 정당의 하수인이 된 여성 아샤, 폐품 분류에 대한 천부적 재능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무슬림 소년 압둘, 변화하는 세상을 목격하면서도 고지식한 부모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가야 하는 운명에 절망하는 소녀 미나,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인재가 되고자 영어 공부에 매진하는 대학생 만주 등 안나와디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앞에 놓인 삶을 버티기 위해 모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체의 편견을 배제하고, 현미경으로 관찰한 팩트를 핀셋으로 들어올리듯 미세하고 정교하게 관찰한 내용들은 도시 빈민의 삶에 대한 놀라운 통찰로 이어진다. 이들이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타인에게 무심한 것은, 윤회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고통에 공감할 여지가 없을 만큼 참혹한 삶 때문이다. 이들이 부정부패에 관대한 것은, 부패와 비리가 이토록 만연한 도시에서는 그것이야말로 가난한 이들의 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존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단순히 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삶을 규정하는 현대사회와 자본주의의 메커니즘 또한 면밀히 분석한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빈민촌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으며, 전 세계적 불황과 비정규직화, 무한 경쟁은 안 그래도 불안한 빈민들의 삶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저자는 이 글로벌 자본주의가 어떻게 안나와디 빈민들을 삶을 위태롭게 하는지와 함께, 안나와디의 주민들이 이 험난한 시대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헤쳐 나가는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취재 대상의 삶 속으로 뛰어들되,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면밀히 확인한 뒤 글을 쓴다는 원칙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결과를 종합하여 도시의 빈곤과 불평등을 야기한 구조적인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르포르타주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인도라는 독특한 문화적, 역사적 환경을 뛰어넘어,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의 동시대인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오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알량한 이익과 한정된 터전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부패의 지배를 받는 하류 도시의 지친 주민들이 선한 태도를 유지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놀라운 점은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선량하며,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게 무너져버린 7월의 어느 오후에 압둘이 부엌 시렁을 놓다가 직면한 것과 비슷한 사태를 일상적으로 접하는 많은 사람들. 집이 기울어져서 무너진다면, 그 집이 놓인 땅 자체가 비스듬하다면, 모든 걸 곧게 세우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370쪽)

 

2.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쓴, 문학적 완성도를 성취한 논픽션!

이 책이 찰스 디킨스, 싱클레어 루이스, 조지 오웰을 떠올리게 하고, 또 그들의 작품에 버금간다고 평가되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문학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문학성은 우선 그 서술 시점에서 두드러진다. 저자는 과감하게도 르포르타주를 쓰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전지적 작가 시점을 채택했다. 외국인 저널리스트라는 한계를 고려한다면 놀라운 선택인데 이는 그만큼 취재와 인터뷰 내용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객관적인 척하는 제3자의 목소리를 지워냄으로써 책은 엄청난 흡입력을 발산하며 취재원들인 안나와디 주민들의 목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전달된다.
저자는 ‘외다리의 분신자살’이라는 참혹한 사건을 중심으로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이야기를 전개한다. 외다리 파티마가 옆집과의 사소한 말다툼 끝에 분신 사건을 일으킨다. 이 사건의 가해자로 옆집 소년 압둘과 그 아버지, 누나가 지목되어 감옥에 갇히고, 가족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어머니 제루니사의 힘겨운 투쟁이 시작된다. 부패한 경찰과 의사들은 이 비통한 사건에서 뒷돈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고, 누명을 벗겨줄 재판은 기약 없이 미루어지기만 한다. 이 사건으로, 부지런히 돈을 모아 빈민촌을 벗어나려던 압둘 가족의 소박한 꿈은 산산조각 난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안나와디 빈민촌에는 비통한 삶을 이어갈 기력을 잃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부모와 오빠에게 매일 매를 맞으며 살던 열다섯 소녀 미나는 결국 쥐약을 삼키는 것으로 못 다 핀 삶을 스스로 마감하고, 목숨의 위협까지 감수하며 돈벌이를 하던 칼루는 결국 어느 날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저자는 탁월한 문학적 구성과 문장으로 이 모든 인물과 사건과 배경을 촘촘히 엮어낸다. 명확한 사실관계들을 모아 ‘슬럼가의 쓰레기 호수가 아름다워 보일 정도로’ 한 편의 잘 쓰인 문학 작품을 만들어내는 저자의 글쓰기는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이다.

나브라트리 첫째 날, 환하게 불을 밝힌 공터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 중에 만주는 없었다. 미나는 쿠퍼 병원에 누운 채 누가 자살을 사주했느냐는 경찰의 질문을 받았다. 미나는 말했다. “누구 때문이 아니에요. 내가 결정한 일이에요.” 나브라트리 셋째 날 밤에 미나는 입을 다물었고, 그러자 쿠퍼 병원 의사들은 “수입 주사액”이라면서 그녀의 부모에게서 5000루피를 뜯어냈다. 나브라트리 여섯째 날에 미나는 죽었다. “세상이 허용한 삶에 질려버린 거지.” 타밀 여자들은 말했다.(285~286쪽)

 

3. 가난한 아이들의 삶과 성장,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다
이 책은 슬럼가에 사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것은 바로 아이들이다. 책에서 아이들은 가장 중심에 서 있는 관찰자이다. 오랜 취재에서 어린이들이야말로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관찰자임을 발견한 저자는 아이들의 시선과 목격담,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실제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통찰들은 모두 아이들에게서 나온다.

아이들은 관찰자인 동시에 책의 주인공이다. 저자는 아이들을 통해 사건을 취재하는 동시에 아이들의 삶과 꿈 또한 주요한 취재 대상으로 삼았다. 돈이 없어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노동에 내몰리고 생계유지와 부양의 책임을 떠맡는 아이들,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해하고 꿈을 좇으면서 끝내 선한 마음을 간직하고자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이는 빈곤과 불평등이 어떻게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냉정한 고찰과 함께,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물과 얼음은 성분이 같았다. 압둘은 사람도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압둘 자신도 경찰과 특수 행정관, 칼루의 사인을 조작한 시체 안치소의 의사처럼 냉소적이거나 부패한 사람들과 근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몰랐다. 재활용품을 분류하듯 실질적인 성분으로만 인류를 분류한다면 거대한 하나의 더미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얼음은 원래의 성분인 물과 다르며, 압둘이 보기엔 물보다 나았다. 압둘도 자신이 이루어진 성분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뭄바이의 더러운 물속에서 얼음이 되고 싶었다.(323~324쪽)

 

본문 속으로
이 호텔의 맨 꼭대기 창문에서 안나와디와 인근의 다른 무단 점거촌을 내려다보면 우아한 현대식 시설들 틈바구니로 웬 마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압둘의 동생인 미르치는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주변은 온통 장미 꽃밭이죠. 우리는 그 사이에 있는 똥 같은 존재고.”(12쪽)

고철은 못으로 두드릴 때 나는 소리로 성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플라스틱은 씹어서 등급을 나누되 그중 단단한 것은 쪼개서 냄새를 맡으라고 했다. 신선한 냄새가 나면 품질 좋은 폴리우레탄이라는 뜻이었다. 압둘은 그렇게 요령을 터득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해부터는 먹을 것 걱정이 없어졌다. 어느 해인가에는 집이 넓어졌다. 판자때기였던 칸막이를 알루미늄으로 교체했고, 불량품이라 버려진 벽돌로 담을 쌓았다.(19~20쪽)

최근 들어 안나와디에는 욕망이 넘쳐났다. 아무튼 압둘이 보기엔 그랬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카스트나 신이 정해준 대로 살겠다는 해묵은 태도는 혁명에 대한 세속의 믿음에 밀려나고 있었다. 쉽게 더 나은 삶 운운하는 안나와디 사람들을 보면 재운이라는 게 마치 일요일에 방문하는 사촌쯤 되는 듯했고,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찾아올 것만 같았다.(21쪽)

압둘이 보기에 안나와디에서 행운은 뭘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사고나 재앙을 얼마나 잘 피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나마 버젓이 살기 위해서는 기차에 치이지 않고, 빈민촌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아야 했다. 압둘은 더 똑똑하지 못한 걸 한탄하면서도 자신에게 이런 환경에 필요한 자질이 하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바로 차우카나, 즉 빈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 눈은 사방팔방 다 볼 수 있거든요.” 압둘은 그 자질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래서 아직 도망칠 여유가 있을 때 재앙을 예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26쪽)

몇 주 전에 압둘은 이곳에서 한 소년이 플라스틱을 분쇄기에 넣다가 손이 잘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소년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내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손목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밥벌이 능력도 그렇게 잘려나갔건만, 소년은 공장 주인에게 빌기 시작했다. “사아브, 죄송합니다. 이걸 신고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 때문에 곤란을 겪으실 일은 없을 겁니다.”(50쪽)

아샤가 어렸을 땐 먹을 게 모자라면 보통 여자들이 굶었다. 사람들은 굶주림을 위장의 문제처럼 말하지만, 아샤는 굶주림의 맛을 기억했다. 혀를 파고드는 그 고약한 맛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어쩌다 침을 삼킬 때면 문득 느껴지곤 했다.(65~66쪽)

영어의 중요성은 인도가 더 세계화된 능력 중심 사회로 변해가는 데 따른 부산물이었고, 만주는 그 변화를 대체로 환영했다. 콩그리브의 작품을 배우든, 학원에서 국제 콜센터 업무를 위한 트레이닝 코스인 체이스/맨해튼 비자카드 응대법을 배우든, 어떤 방법으로 영어를 배우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월한 교육을 받은, 세계화 시대의 인재라는 증명서인 영어는 빈민촌을 벗어날 가능성의 도약대였다. 만주의 영어는 아직 어눌하고 어색했지만, 그래도 안나와디에서는 두 번째였다.(109쪽)

제루니사는 집으로 돌아와 흐느껴 울었다. 옆집 여자의 몸을 마지막으로 닦아준 헝겊을 그때까지도 손에 쥐고 있었다. 제루니사가 그토록 서럽게 운 이유는 남편과 아들, 딸의 기막힌 처지 때문이 아니었다.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커다란 부패의 거미줄 때문도, 더 비열한 자가 덜 비열한 자를 벌하는 혼돈의 소용돌이 같은 사법제도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 제 손아귀에 있었던 것 때문에 울었다. 제 몸을 무기 삼아 이웃을 무참히 공격한 여자에게 이별선물로 준 아름다운 누비이불이 아까워서 울었다.(186~187쪽)

만주가 집에서 초콜릿 케이크 조각에 눈물을 쏟고 있을 거라는 아샤의 짐작은 옳았다. 몇 년 동안 아샤는 딸이 자신의 남자 관계를 모르길 바랐지만, 지금은 이런 걸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영악하게 키울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상류층의 잠자리 윤리가 문란한 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샤의 행동은 욕정이나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사랑받는 느낌, 아름다운 여자라는 자의식
을 원해서도 아니었다. 핵심은 돈, 그리고 권력이었다.(234쪽)

2009년은 가난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빈민촌에 도달했고, 세계적인 경제 불황 위로 테러의 공포가 덧씌워졌다. 많은 안나와디 사람들이 쥐 먹는 법을 다시 배웠다. 소누는 수닐에게 나우파다 빈민촌에서 개구리를 잡아오라고 시켰다. 오수 웅덩이보다는 나우파다에 사는 개구리가 더 맛이 좋았다. 호화 호텔을 향해 시비를 걸던 미치광이 넝마주이는 하얏트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비난을 중단했다. 그 대신 파란색 무광택 유리로 장식한 호텔에 이렇게 간청했다. “하얏트야, 나는 일은 너무 많은데 손에 쥐는 건 너무 적어. 어떻게 좀 해줘.”(291쪽)

어느 나라에나 신화가 있는데 성공한 인도인들은 불안정과 적응능력이라는 낭만적인 신화에 자주 빠져들었다. 일상의 혼란과 예측불가능성이 인도의 급성장에 일조했다는 믿음이었다. 일례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수도꼭지를 돌리고 전기 스위치를 올렸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고 있다. 그런데 안전을 담보하기 힘든 인도에서는 이런 일상의 불확실함이 교묘하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의 강국이 되는 데 도움이 됐다는 논리였다. 일상의 불확실함이 가난한 사람들의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건 틀림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노력과 결과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은 힘이 빠지게도 했다.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걸 시도해요.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죠.” 안나와디의 어느 여자는 그런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325쪽)

뭄바이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다른 곳에도 만연했다. 전 세계로 무대를 확대한 시장 자본주의 시대에도 희망과 불만은 협소한 지역 안에서 옹색하게 이해됐고, 공통된 고통에 대해서는 둔감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연대하지 않았다. 일시적이고 알량한 이익 앞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리고 하류 도시의 이런 투쟁은 전반적인 사회구조에 희미한 파장을 일으키다 잦아들었다. 투쟁은 부자 동네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어쩌다 소동을 일으킬 뿐, 그곳에 균열을 야기하지는 않았다. 정치인들은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무시했고,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불평등한 도시는 비교적 평화로운 상태를 그럭저럭 이어갔다.(349쪽)

 

추천사

읽고 나면 세계관이 달라지는 책들이 있는데,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저자의 뜨거운 영혼과 교감한다면 심층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에이드리언 니콜 르블랑(『랜덤 패밀리』)

의문의 여지 없이, 지금까지 현대 인도를 다룬 책 중 단연 최고의 책. 내가 25년간 읽은 책 중 최고의 내러티브 논픽션이기도 하다. —라마찬드라 구하(『간디 이후의 인도』)

대단히 많은 장점을 지닌 책이다. 훌륭한 연구 결과를 세련되게 정제한 결과, 독자들은 많은 걸 배우면서도 계몽의 냄새를 맡지 못한다. 저자의 우아하고 생생한 문장은 주목을 끌고자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안나와디 사람들의 진실된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넝마주이와 좀도둑, 참혹한 불의의 희생자들. 부는 우리를 그들의 삶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은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뛰어난 책이다.
—트레이시 키더(『고통은 너를 삼키지 못한다』)

저자가 사랑을 담은 날카로움으로 풀어낸, 인도의 가난한 이웃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애환은 세계 곳곳에서 만났던 이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지구 마을을 함께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우리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책임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았다. 이 책을 통해 절망에 내몰린 이웃들의 슬픔을 동정이 아닌 공감으로 바라보며, 행복한 지구 마을을 만들어가는 데 마음을 모으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양호승(한국월드비전 회장)

캐서린 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가난의 본성을 모두 전면에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가난에 상주하는 불확실성, 가난에서 피어오르는 비도덕, 가난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맞이하는 어떤 찰나의 순간들. (……) 부의 산문은 매우 아름답고 재치 넘치며 효율적이다. 이야기가 너무나 강력해서 이것이 전례 없이 위대한 탐사 보도물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부는 주인공들의 삶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고집스럽게 파고든다. —《파이낸셜타임스》

풍부하게 직조된 성공과 좌절의 이야기. 전지적 화자는 소설처럼 읽히는 세부 묘사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논픽션의 특징이라 할 절박한 인간성마저 완벽하게 구현한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정말 놀라운 책이다. 세계 최대의 메트로폴리스에 있는 ‘하류 도시’에 대한 충실한 앙시도라는 점에서 놀랍고, 전통적인 서사에서는 늘 배제되어온 사람들의 삶과 희망과 두려움을 깊이 공감하며 강렬한 밀도로 쓴 글이라는 점에서 놀랍다. 또 이전에는 (최소한 인도에서는, 그리고 외국인에 의해서는)한 번도 이야기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도 놀랍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이런 형태의 글이 존재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열정적인 설명이면서 동시에 효과적이고 생생한 산문. 스릴러처럼 읽히면서도 싱클레어 루이스가 부러워할 법한 일격으로 가득 찬 글. —《워싱턴포스트》

이 책에 헌사된 최상급 표현들에오도되지 않기를 바란다.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든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든가, 캐서린 부의 최고작이라든가 하는 표현들. 이 책은 그 표현들을 모두 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디아익스프레스》

굉장하다. 이 책은 잔혹 행위의 목록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안나와디에 직접 장기간 몸을 던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만든 이 책은 주의 깊게 연구한 사람들의 삶을 하나의 서사로 직조해낸다. 고도로 정밀한, 그러나 직접 발화되지는 않은 분석들을 바늘과 실 삼아서. 그 대단한 문학적 힘은 작가의 명징하고 우아한 글쓰기에서 기인한다. (……) 부는 모든 페이지에 걸쳐 궁핍과 허기의 경험을 조심스럽게 전달하고 이데올로기적인 주장들을 부드럽게 냉소한다. —《뉴욕타임스》

작가 소개

캐서린 부

《워싱턴포스트》를 거쳐 현재 《뉴요커》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 기자로 일하는 20여 년 내내, 가난한 공동체를 탐구하며 빈곤 탈출과 기회 분배를 깊이 고민해왔다. 이를 주제로 한 기사들로 맥아더재단의 지니어스 보조금을 받았고, 미국잡지협회상 특집 기사 부문, 퓰리처상 공공 부문 등을 두루 수상했다. 『안나와디의 아이들』은 빈곤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진행한 4년간의 장기 프로젝트가 맺은 결실로, 엄격한 취재 원칙과 천부적 문장력이 집약된 뛰어난 성과물이다. 21세기의 가장 불평등한 도시로 손꼽히는 인도 뭄바이의 빈민촌을 수년간 밀착 취재하며 인도 경제 성장의 이면을 통렬하게 고발한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인도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출간 직후 세계 20여 개국으로 번역되었으며, 2012년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현대 인도를 다룬 최고의 책이자, 문학적인 문장이 빛나는 논픽션으로 평가받는 이 책에서 캐서린 부는 빈민촌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경제 성장이 약속한 장밋빛 미래의 적나라한 현실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

강수정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뒤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서』, 『가짜 논리』, 『마지막 기회라니?』, 『길버트 그레이프』, 『신도 버린 사람들』,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등이 있다.

독자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