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책이 사라지는 시대, 연약한 종이의 질긴 내구성을 탐구하다!
부제: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
원제 paper
워서 부제: an elegy
출판사: 반비
발행일: 2014년 8월 25일
ISBN: 978-89-8371-677-4
패키지: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322쪽
가격: 18,000원
종이의 시대를 살아온 모든 이들을 위한 책!
우리는 모두 종이의 시대를 살아왔다. 종이 책을 읽었고, 종이 인형을 가지고 놀았고, 종이 노트에 메모를 했으며, 종이로 된 여권을 들고 여행했고, 종이로 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종이 위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 이언 샌섬은 아예 우리 모두는 ‘종이로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종이의 가장 오래된 파트너였던 종이 책이 서서히 사라져가면서, 종이의 운명도 그와 함께 마감하게 되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종이 없는 세상에 살게 되는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저자는 동서양의 역사 속에서 종이가 걸어온 길을 종횡무진 누비며 종이의 다양한 쓰임새를 탐색한다. 탐색의 범위는 종이의 쓰임새만큼이나 광범위하다. 철학자와 소설가의 습작 노트나 지도, 광고 포스터는 물론, 지도 도둑, 지폐 위조범, 지도 도둑 등 종이에 숨은 뒷이야기를 발굴함으로써 역사의 외연을 크게 넓힌다. 이 광대한 역사를 뒤쫓는 저자의 노력은 치밀하고도 집요하다. 참조하고 인용한 문헌의 목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엄선된 도서관을 방불케 하며, 세계 곳곳에서 공식, 비공식 종이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분류하고 선별하는 과정은 하나의 역사박물관이 세워지는 과정을 연상케 한다. 이 집요한 탐구력 덕분에 종이의 역사는 추억 몇 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낭만적 감성을 자극하는 소품이 아니라 종이의 위대한 생명력을 증명하는 증인으로 거듭났다.
일단 소재를 확보하고 나면, 저자는 사료에 몰두하는 역사가에서 탁월한 문학적 감성과 필력을 지닌 비평가이자 작가로 돌아온다. 책과 도서관을 소재로 한 코믹 미스터리 시리즈로 명성을 얻은 소설가답게, 또한 영국의 주요 일간지와 주간지에서 활약하는 비평가답게 저자는 자신만의 문체와 감식안, 유머감각으로 종이의 역사에 독창적인 색채를 입힌다. 각 사례들의 의미망을 독특하고도 폭넓게 해석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종이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이 책은 아주 독특하게 쓰인 종이의 문화사이자, 종이의 시대를 지나온 우리의 삶에 대한 회고적인 명상이기도 하다.
명상을 마친 저자는 종이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펼친다. 디지털 시대에도 종이 그 자체는 물론, 종이의 유령, 종이의 그림자가 디자이너의 스케치북 속에, 어린이의 장난감에, 전자책 단말기 안에 짙게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종이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힘찬 예언은 종이에 애착과 향수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 주는, 종이 위에 쓴 송가이다.
서론. 종이에 경의를
1. 종이 제작: 한없이 복잡한 기적
2. 종이와 나무: 숲이 종이를 구했다
3. 종이와 지도: 걸어 다니는 종이
4. 종이와 책: 탐서벽에 빠진 사람들
5. 종이와 돈: 지옥의 전경
6. 종이와 광고: 종이가 도처에 있다
7. 종이와 건축: 건설적 사고
8. 종이와 예술: 비밀은 종이다
9. 종이와 장난감: 진지한 게임들
10. 종이와 종이접기: 놀라운 정신적, 육체적 치료법
11. 종이와 정치: 신분을 증명하기
12. 종이와 영화, 그리고 그 밖의 것들: 다섯 장 남다
감사의 글. 종이 사이의 공간
참고문헌. 책을 조각조각 찢기
종이 박물관에 들어간, 독특하고 흥미로운 컬렉션들
저자는 이 책을 하나의 종이 박물관에 비유한다. 동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가로지르면서, 종이의 다채로운 쓰임새를 수집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종이 박물관의 컬렉션들은 아주 독특하고도 화려하다. 종이 박물관의 개성 넘치는 큐레이터를 자처한 저자는 종이의 가장 훌륭한 짝꿍인 책은 물론 지도, 결혼 증명서, 보드게임, 담배, 건축 설계도 등 사람들의 삶 곳곳에서 쓰인 다양한 종이의 역사를 발굴하고 채집해 이 책 속에 전시한다.
그 화려한 컬렉션은 ‘단단한 철로 된 짐승’, 곧 ‘거대한 제지 기계’와 함께 ‘넝마’와 ‘펄프’ 이야기로 시작한다. 종이가 어떻게 탄생되었으며, 그 종이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종이의 역사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당연한 발판이다. 종이의 탄생을 추적을 시작한 저자는 동에서 서로 전파된 제지 기법을 탐구하고, 제지 기계의 진보 과정을 조사하면서 종이를 수작업으로 만들기 시작하던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작 방법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가 책을 집어 들거나 종이 한 장을 잡을 때, 손 안에 든 것은 자연 제품도 아니고, 정신의 소산도 아니다. 2000년 동안 끝없이 두들기고 담그고 말린 결과물이다. 인간의 노동과 창의력의 증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기적이다.(49쪽)
물론 처음부터 사람들이 ‘펄프’를 두들기고 담그고 말린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 초창기의 종이는 펄프가 아니라 넝마로 만들었다. 하지만 넝마는 곧 부족해졌고 그에 따라 종이의 생산도 위기를 맞았다. 종이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은 수많은 펄프를 제공해준 숲이었다. 그렇게 나무가 종이를 구했다. 하지만 그 대신 숲이 위기에 처했다. 저자는 숲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애착을 월든의 글, 그림 형제의 동화를 빌어 이야기하면서, 숲과 종이의 공존법을 모색한다.
세 번째 컬렉션부터는 본격적인 종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무엇보다 ‘걸어 다니는 종이’, 곧 지도이다. 저자는 16세기에 일어난 지도 혁명을 추적하면서, 이와 동시에 일어난 ‘부동산 투기사업’ 붐과 크고 작은 항해 모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개한다. 또한 디지털 지도가 일반화된 오늘날에도 종이가 어떻게 지도 제작에 유용하게 쓰이는지를 설명한다.
네 번째 컬렉션은 종이의 가장 오랜 파트너인 책이다. 책은 많은 이들이 종이에 애착과 추억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다. 저자는 ‘탐서벽’, ‘종이 역병’, ‘분서’와 같은 흥미로운 키워드를 통해 책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면서도 종이와 책을 쉽게 동일시하는 습관에 대해서 날카로운 비평을 곁들인다. ‘얄궂은 일이지만 책을 태워야만 우리는 책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101쪽)
책 수집만큼 허세라는 병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있을까. 책이야말로 종이 역병이 창궐하는 곳이다. 종이가 힘과 지위를 가장 뚜렷하게 공격적으로 내세우는 곳이다. 우리도 고대인과 다를 바 없이 사물에 부적처럼 영험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책은 우리가 집에서 섬기는 신이다. 문학사가 제임스 캐리는 비평의 결을 거스르는 말을 했다. “책은 중세 문화사에서 정점을 이룬 사건이었다.” 책은 “중세 문화가 단절되는 게 아니라 지속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중세에 살고 있는 셈이다.(93쪽)
다섯 번째 컬렉션은 지폐, 그리고 ‘위폐’다. 저자는 보관과 제작이 용이한 지폐가 발명되면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역사는 책이 아니라 현금, 증권, 주식, 증서, 약속어음, 환어음에 쓰인다.’(111쪽)고 할 만큼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설명하면서도 지폐 그 자체는 결국 허구적인 것임을 재차 강조한다. 그리고 그 허구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위폐의 역사를 통해 지폐 뒷면에 숨은 이야기들을 발굴한다.
여섯 번째 컬렉션은 포스터로 대표되는 광고이다. 19세기 중반에 온갖 화려한 인쇄를 가능케 한 석판인쇄술이 발명되면서 광고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신문, 잡지, 포스터 등 각종 종이에 광고가 실렸고 바야흐로 ‘현대 소비자본주의는 19세기에 종이 위에서 태어나고 꽃피었다.’(134쪽) 수많은 광고 포스터와 상품 포장지들을 살펴본 저자는 ‘광고는 종이의 저주이고 원죄이며 끝없는 구원과 재생을 희구한다.’는 표현으로 광고에 쓰인 종이의 중차대한 역할을 압축한다.
광고는 작가, 예술가 들이 만들어내고 신문, 잡지에 실리고 포스터나 광고판으로 전시되며 “혼란스러운 사회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19세기에 ‘광고’라는 형태로, 종이는 왔고, 보았고, 이겼다.(134~135쪽)
일곱 번째 컬렉션은 건축 설계도, 그리고 벽지이다. 모든 건축은 맨 처음 종이 위에서 설계된다. ‘좋든 싫든 건축은 역사상 오랜 기간 동안 종이와 관련된 직업이었다.’(154쪽) 저자는 디지털에서 설계하는 것이 가능해진 현대에도 종이를 고집하는 건축가들의 사례를 통해, 종이와 건축의 질긴 인연을 탐색한다. 건축에 쓰인 종이의 역사를 훑으면서 저자가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벽지이다. 저자는 벽지는 종이가 아닌 다른 것을 연상시키도록 디자인된다는 점에서 ‘가장 기만적인 형태의 종이’(169쪽)라고 묘사한다.
여덟 번째 컬렉션은 화가들의 캔버스이다. 종이는 예술가들의 오랜 파트너였다. 저자는 앙리 마티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종이의 품으로 달려간 화가들’의 이야기와 함께, 콜라주와 같이 종이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 예술 기법들을 설명하며 예술의 발전에 종이가 기여한 바를 이야기한다.
아홉 번째 컬렉션은 보드게임, 놀이 카드 같은 종이로 만든 장난감들이다. 종이 장난감은 어린이의 주변에 늘 넘쳐난다. 여러 종이 장난감들을 나열하던 저자는 그중에서도 특히 한때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보드게임의 역사를 훑으며, 그 속에 담긴 교육적 열정과 상업적 욕망을 동시에 해부한다.
열 번째 컬렉션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오리가미, 즉 종이접기이다. 저자는 동양의 종이 예술이었던 종이접기가 서구에서 활성화되는 데에 기여한 세 인물의 독특한 인생사를 중심으로 종이접기의 세계를 분석한다. 종이접기에 이어 종이 오리기의 이야기를 할 때는 동화 작가 안데르센이 종이 오리기에 집착했던 의외의 이야기를 통해 이 독특한 예술의 매력을 설명한다.
열한 번째 컬렉션은 여권을 비롯한 각종 정치적 서류들이다. 이런 공식 문서와 서류 등을 통해, 특히 여권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신분을 증명할 수 있다. 종이가 곧 우리의 정체성을 만든다. 하지만 정치의 세계에서 종이의 역할은 매우 역설적이기도 하다. 신분을 증명해 안전을 지켜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선전용 전단처럼 전쟁 무기로 쓰이기 때문이다. “종이는 폭군이자 압제자지만, 또한 구세주이자 증인이기도 하다.”(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