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대학 교육에 미래는 있는가?
2020년대에 다시 읽는 현대의 고전
지난해 한 대선 후보가 지방 국립대를 찾은 자리에서 ‘인문학이라는 것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며 병행해도 되는 것’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을, 대학 교육을 바라보는 지배적인 관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대학은 기업에서 쓰일 인력을 생산하는 곳이므로 인문학보다는 ‘실용적인’ 전공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대두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0년을 전후하여 본격화된 대학의 인문학 전공 통폐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더불어 대학 구조조정이 논의되면서 가장 먼저 타깃이 된 것도 인문학이었다. 전통적인 인문학, 즉 문사철 학과들은 좀 더 실용적이라고 여겨지는, 학생들을 모집하기 용이한 길고 낯선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있다. 이런 흐름과 더불어 인문학의 ‘쓸모’에 관한 논의도 등장했다. 인문학의 존재 가치를 그 실용적 쓰임새에서 찾으려는 흐름인데, 이를테면 ‘인문학적 경영’이나 ‘비즈니스 인문학’ 등의 트렌드가 그것이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동안 오프라인 강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그간 쌓여온 고등교육 시스템의 문제가 전면화되기도 했다. ‘수백만 원짜리 인강’이라는 비아냥을 받으며 대학 교육 무용론이 대두된 것이다.
이런 총체적인 인문학의 위기, 대학의 위기 상황에서 ‘인문학의 미래’라는 제목의 책을 펼치는 것은 새삼스럽다. 미국의 학자 월터 카우프만은 『인문학의 미래』에서 1970년대 당시 미국 대학의 현실과 인문학 교육에 관해 날카롭게 진단하고, 인문학자는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가부터 인문학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까지 종합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철학자, 교수, 번역가, 서평가, 편집자, 시인 등 다양한 이력으로 활동한 카우프만은 단순히 추상적인 논의에 그치지 않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제 학술, 출판, 교육 영역에 밀착해 있는 논의를 전개한다.
『인문학의 미래』는 한국에도 세 번째로 소개가 되는 책이다. 1998년, 2011년에 번역되어 학계 안팎에서 널리 읽혔던 이 책을 전면 새롭게 번역하여 다시 펴냈다. 1970년대 미국 상황에 바탕해 쓰인 책이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도 대단히 동시대적인 논의로 읽힌다. ‘정량 측정’이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고, 학술적 진보는 자연과학 모델에 의존하고, 대학은 자율성을 잃고 기업과 자본에 종속되어가던 당시 미국 학계의 상황이, 바로 지금 한국의 고등교육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인문학을 왜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가?
인문학자가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
카우프만이 이 책에서 겨냥하는 일차적인 독자이자 변화를 촉구하는 대상은 ‘인문학자’, 인문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 인문대학의 교수들과 행정가들이다. “인문학이 표류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인문학 분야의 사람들은 목표에 대해서 거의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며, 카우프만은 인문학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짚는다. 첫째, 인류의 가장 위대한 업적의 보전과 육성을 위해, 둘째, 목표를 숙고하고 대안에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 셋째, 선견(vision)을 가르치기 위해, 넷째, 비판적인 정신을 육성하기 위해. 『인문학의 미래』는 이 네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고심하고 어떤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가에 관한 신랄한 비판이자 상세한 안내다.
카우프만은 먼저 “네 가지 종류의 정신”, 즉 인문학자의 네 가지 유형을 분류함으로써 논의의 기초를 다진다. 선견자, 현학자, 언론인, 소크라테스 유형이 그것이다. 선견자란 말 그대로 선견(vision)을 보유한 인물로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시대를 앞서 나가기 때문에 종종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한다. 현학자는 ‘현미경주의’를 그 특징으로 하는, 중세 스콜라 철학자와 유사한 유형이다. 이들은 엄밀함을 강조하지만 자칫 사소함에 매몰될 수 있다. 언론인은 즉각적 소비를 위한 글을 쓰며, 이들은 그 특성상 엄밀한 검토나 연구와 거리가 멀다.(카우프만은 한나 아렌트가 이런 언론인 유형에 속한다고 비판한다.) 소크라테스 유형은 그 유일무이한 사례이자 모범인 소크라테스에서 볼 수 있듯 기존의 합의와 믿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가장 필요한 존재인 동시에 가장 희귀한 존재다.
카우프만은 이 유형들 모두 각각의 필요와 장점을 갖는다고 보았지만, 현대 대학 현장에서 주로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이 현학자 유형으로 채워지면서 선견자와 소크라테스 유형이 설 자리를 잃게 됐다고 비판한다. 이런 경향은 카우프만이 짚는 미국 대학 교육의 위기를 가져온 두 가지 계기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첫째, 2차 대전 이후 대학이 팽창하면서 선별을 위한 경쟁시험이 일반화되고 정량 측정의 시대가 도래했다. 둘째, 1957년 스푸트니크 충격이 실증주의의 확산을 가져오며 모든 학술적 진보가 자연과학 모델에 의존하게 됐다. 이런 상황들은 현미경주의에 대한 천착을, 지나친 전문화로 인한 지식의 분절을 가져왔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연구중심대학-산학협력모델’ 시스템 아래의 인문학자들에게도 뼈아프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독서에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할까?
서평가, 번역가, 편집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윤리는?
인문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 책을 읽는 일, 그리고 책을(지식을) 선별하여 소개하는 일이다. 카우프만은 네 가지 읽기, 즉 주해적 읽기, 독단적 읽기, 불가지론적 읽기, 변증법적 읽기의 특징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맥락적으로 텍스트를 파악하는, 저자의 전체 작품과 저자가 속한 역사적 배경 안에서 텍스트를 읽어낼 수 있는 변증법적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문학의 미래』는 사회 안에서 지식을 유통하는 역할을 하는, 저자와 독자 사이에 끼어 있는 ‘중개상’인 서평가, 번역가, 편집자에게도 자신의 일을 견주어볼 수 있는 윤리를 제시한다. 현대의 독자는 서평, 번역, 편집에 크게 의존한다. 그렇기에 무엇을 간행물에 실을 것인가, 어떤 텍스트에 관해 다룰 것인가, 무엇을 번역하고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카우프만은 식별 능력을 갖추지 못한 편집자, 학파의 성향에 따라 편중되는 지면 등이 가져오는 서평의 문제를 살펴본다. 그리고 저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포착해야 하는 번역자의 의무, 그 과정에서 상실되는 원문에 관해 독자들에게 설명을 제공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도 논한다. 특히 번역서에서 이런 정보들을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지에 관해 상세하게 살펴본 대목은 학술서 번역과 편집의 교본으로 삼아도 좋을 정도다. 또 비판적으로 선별하지 않고 저자의 모든 작품을 전집으로 담는 식의 출간 방식을 비판하며 편집 과정에서 갖추어야 할 식별 능력에 관해 설명한다. 이런 인문학의 중개상들, 편집자와 번역가는 자신들이 어떤 지식을 독자들에게 왜 소개하는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하며, 그것이 지식을 보전하고 육성하는 인문학의 책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민해야 한다.
선견은 가르칠 수 있는가?
학제 간 연구 커리큘럼의 제안
『인문학의 미래』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는 카우프만이 제시하는 한 학기 분량의 수업 커리큘럼이다. 카우프만은 지나치게 분절되고 전문화된 대학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학제 간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주요 주제로 다루는 강의를 통해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카우프만은 ‘형벌’이라는 문제를 놓고 한 학기의 수업을 구축하자고 말한다. 이 통합 강의에는 철학, 종교, 고전학과의 그리스 비극, 러시아 소설, 정치 이론과 심리학과 사회학과 인류학, 법학 등 여러 분야의 교수들과 문헌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더해 학생들이 직접 재판을 방청하고, 관련 예술 작품으로 강의를 보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가 예시하는 또 다른 주제는 ‘죽어감’이다. 이 역시 다양한 학문 분과에서 필수로 다루어지는 주제다. 이 강의에서 괴테와 릴케 등이 쓴 죽음과 관련된 시, 케테 콜비츠와 같은 예술가의 작품을 과학과 의학의 문제와 밀접하게 다룸으로써 죽어감이라는 문제를 숙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학제 간 연구를 통해 학생들은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고, 주제를 다각도에서 살펴보고, 현실 문제와의 관련성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카우프만이 이런 제안들을 통해 달성하려 하는 것은 앞서 살펴본 인문학의 목적, 즉 선견을 가르치고 비판적인 정신을 육성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인문학자와 학생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법, 사회제도, 의학 등 여러 분야에 인문학의 선견과 비판 정신이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협력과 기여를 기피할 때 인문학에 미래가 있을지 의심스럽다며, 인문학은 “진지한 문제들에 대해서 더 나은 이해를 얻도록, 그리하여 우리가 더 인간적이 되도록” 도울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추천사
인문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공부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학생,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으나 분과학문과 대학의 관습이라는 벽에 부딪혀 혁신의 희망을 잃은 인문학자, 그리고 장사꾼이 개발한 인문학이라는 신종 비즈니스 아이템에 신물이 난 인문학 독자 모두에게 권한다. 신랄하지만 성찰적이고 예리하게 인문학의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를 고민하는 독서가, 서평가, 작가, 교수, 번역가, 심지어 편집자인 카우프만의 이 책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모르던 미래의 인문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터널 속에서 어떻게 써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던 나에게도 어느새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노명우(사회학자, 니은서점 마스터북텐더)
대학의 기업화 추세 속에서 대학의 공공성이 부정되고, 대학, 지식인, 인문학의 존재 의미가 쇠퇴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학령인구의 감소라는 인구학적 충격까지 겹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1970년대 미국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카우프만의 진단이, 지금 한국에서 한층 심각하고 복합적인 각도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이유다. ―조형근(사회학자)
서론 9
1장 네 가지 종류의 정신 25
2장 읽기의 기술 91
3장 서평의 정치학, 번역과 편집의 윤리학 143
4장 고등 교육에서 종교의 위치 199
5장 선견은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237
6장 학제 간 시대 275
감사의 말 315
개정판 서문(솔 골드워서) 319
해제│소크라테스적 질문을 되살리기 위한 브레이크는 어디에?(조형근) 342
옮긴이의 말│21세기에 다시 묻는 인문학의 미래(박중서)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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