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비평, 저널리즘을 넘나드는, 무엇보다 ‘인간적인’ 시선
존 디디온, 수전 손택을 잇는 지금 세대의 목소리
에세이의 본질에 관한 통렬한 사유
가장 동시대적인 목소리 레슬리 제이미슨의 진면목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미국의 젊은 작가 레슬리 제이미슨의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가 반비에서 출간되었다. 레슬리 제이미슨은 특유의 통찰력과 엄밀한 지성, 독특한 주제와 그것이 지닌 겹겹의 의미를 파헤치는 성실성으로, 전작인 『공감 연습』, 『리커버링』을 발표하여 수전 손택의 글쓰기에 비견되면서 국제적인 독자층을 형성한 가장 동시대적인 에세이스트다. 첫 산문집 『공감 연습』에서 직업 경험을 반추하며 고통에의 공감을, 회고록인 『리커버링』에서 알코올중독 경험과 회복 과정을 그려냈다면,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는 글쓰기라는 예술의 양가적인 측면과 쓰는 이로서의 수행에 대한 내면적인 고찰을 아로새겼다.
사람들을 재현하는 것은 언제나 그들을 축소하는 일이며, 프로젝트가 “끝났다”고 하는 것은 이런 축소와 불편한 휴전을 맺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심 이런 압축에 반발했다. 내심 이 말을 되풀이하고 싶었다. 이게 다가 아니야, 이게 다가 아니라고, 이게 다가 아니라니까. 내가 종종 의뢰받은 분량보다 1만 단어나 더 쓰는 것은 그 때문이다.(211쪽)
“갈망의 글쓰기, 관찰의 글쓰기, 거주의 글쓰기”라는 세 가지 부제에서 엿보이듯, 제이미슨은 자신에게 없는 타인의 무엇을 갈망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관찰하고 응시하는 일, 그리하여 결국 그 안 혹은 그 언저리에 정주하고 거주하는 일에 대하여 치열하게 묻고 탐구해나간다.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는 제이미슨을 잘 아는 독자에게는 동시대와 호흡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가는 작가의 현주소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가장 사적인 경험에서 보편적인 주제를 발견하고 파헤쳐나가는 제이미슨 특유의 경이로운 글쓰기를 체험할 기회가 될 것이다.
에세이의 본질에 관한 통렬한 사유
이 작가가 어느 층위까지 파고들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나는 감탄했다. 타인에 대해 글을 쓴다는 건 대체 어떤 행위인가? 혹은 타인을 경유하여 결국 나를 글쓰기의 도마에 올려야만 할 때 발생하는 본질적인 의혹을 해소하려면 대체 어떤 행위가 요구되는가? 레슬리 제이미슨은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고, 첫인상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관념들을 새기며 쓰는 이가 목도하는 세계를 단단한 문장들로 벼려낸다. 이 책은 삶이 간혹 허락하는 경이로운 순간들과 그 기나긴 사이를 살아가는 이들을 이해하려는 통렬하고 아름다운 시도로 가득하다.― 한유주(소설가) 추천사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이들에 대한 이끌림에는 희미한 독선이 묻어 있다. 어쩌면 나는 내가 패배자들을 변호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는 겁쟁이인지 모른다. 어쩌면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살아남고자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를 반박하기에는 너무 겁이 많은지도 모른다.(54쪽)
근래 몇 년간 ‘에세이’는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였다. 개인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 책들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큰 환영을 받았고, ‘개인적’이고 ‘사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었던 이야기들을 건져 올려 책이라는 보편의 이야기로 빚어내는 일의 의미에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그러나 과연, 에세이란 무엇인가? 에세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에세이를 쓰고 만드는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어떤 곤경에 처하고, 우리는 나 자신의,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아주 내밀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가?
레슬리 제이미슨은 단연코 이런 쟁점들을 가장 치열하고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는 작가다. 한국에 앞서 소개된 『공감 연습』은 고통이라는 경험을 매개로 사람들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파고들었고, 자신의 알코올중독과 회복 경험에 관한 회고록 『리커버링』은 한 젊은 작가가 보편적 이야기가 지닌 가치를 받아들이는, 그럼으로써 에세이스트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는, 이처럼 나-타인의 삶을 기록하는 데 있어 한층 성숙한 작가로서 제이미슨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그녀는 고독한 고래에 천착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25년간 멕시코의 한 가족을 사진 찍은 미국 작가에 관해 다루며, 전생을 믿는 이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타인의 삶에 어느 정도까지 침해적으로 친밀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진실’을 구할 수 있는지, 혹은 그 진실이라는 것은 얼마나 ‘오염된’ 것인지 하는 질문들을 하나씩 탐색해나간다.
아름답고 유려한 글쓰기만큼이나 제이미슨을 ‘지금 시대의 목소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이 집요함일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범람하는 시대, 한편으로 ‘남’의 이야기를 갈취해 내놓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시대에, 이 작가의 날카롭고 솔직하며 애정 어린 시선은 에세이라는 장르의 본질과 미덕에 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에세이를 읽는 독자, 에세이를 쓰는 작가, 그리고 더 넓게는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업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럼에도 쓰기, 살기, 비명 지르고 불타오르게 하기
제이미슨은 1부 「갈망의 글쓰기」에서 본질을 알지 못하고 제대로 설명하거나 증명해내지 못하며 갈망하는 이들을 다룬다. 「52 블루」에서는 처음 발견된 음역대의 주파수로 관찰된 한 마리 고래와 그에게 감정이입하는 이들을, 「우리는 다시금 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에서는 증명하기 어려운 환생의 경험을 주장하는 이들을, 「레이오버 이야기」에서는 레이오버를 하며 스친 이들의 배경을 알고 나서야 그를 평면 아닌 입체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자신을, 「심 라이프」에서는 온라인 환경에 제2의 삶을 꾸린 이들을 소개한다.
고래가 고래일 수 있도록 인정하여 우리가 떠안기는 은유로부터 쉬게 하는 동시에, 우리가 만들어준 두 번째 자아의 윤곽선도 포용해 그가 우리에게 해준 일들을 인정한다면 어떨까? 그 고래가 자신의 실제 형상과 우리가 그에게서 필요로 한 형상 둘로 쪼개지게, 그 둘이 따로따로 헤엄치게 한다면. 우리는 그 둘을 서로의 그림자에서 해방한다. 그리고 두 개의 다른 길을 따라 바다를 건너가는 모습을 지켜본다.(44쪽)
타인의 삶을 쓸 때, 타인의 삶으로 예술을 할 때, 타인을 경유해 나에 관해 쓸 때 우리는 곤경을 맞닥뜨린다. 정작 우리는 타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으며, 그것은 자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기껏 그려낸다 하더라도 그 윤곽은 완벽하거나 단일하지 않다. 2부 「관찰의 글쓰기」는 이 주제를 치열하게 파고든다. 「저 위 자프나에서」에서는 역사적 재난의 현장을 관광하고 무지를 진정성으로 포장하는 취재에 관하여, 「그 어떤 혀로도 말할 수 없다」에서는 남북전쟁의 참상을 찍고 전시하는 일에 관하여,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서는 작가 제임스 에이지가 앨라배마의 소작농 가족과 머물며 다른 방식으로 두 차례에 걸쳐 쓴 결과물에 관하여, 「최대노출」에서는 사반세기에 걸쳐 한 가족을 담은 사진가의 프로젝트에 관하여 쓴다.
특히 표제작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서 제이미슨은 에이지의 글을 두고 “그는 매개나 변형 없이 진실을 전달한다는 리얼리즘의 환상을 폐기한 뒤 그 대신 모든 매개, 모든 조작, 모든 기교와 주관성, 그리고 이 기록을 하는 사람, 즉 자기 자신이 일으키는 불가피한 오염을 고백한다.”고 말하면서 본인 작업에 앞선 자취를, 또 본인이 뒤따를 길을 모색하는 듯하다.
마지막 장 「거주의 글쓰기」는 작가의 주무기인 자기고백과 감정의 농도가 짙은 파트다. 「리허설」에서는 친구와 부모의 결혼식 풍경을 회상하고, 「기나긴 교대」에서는 아빠의 아버지로서의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진짜 연기」에서는 시뮬레이션 체험과도 같은 라스베이거스 방문과 거기에서의 짧은 연애를 복기하고, 「유령의 딸」에서는 계모라는 자신의 새로운 삶을 기술하며, 「실연 박물관」에서는 이별과 연애의 잔해를 들여다보고, 「태동」에서는 식이장애를 겪던 동일한 몸이 동일하지 않게 느껴지는 출산의 경험을 현재형으로 순차한다.
이 책의 마지막 글 「태동」은 “어원 자체가 임신에서 비롯”된 갈망(longing)이라는 낱말을 다시 한번 끄집어내며, 이번에는 이를 “부재를 암시하지 않는 갈망”, 자신에게 속한 갈망으로 갱신한다. 출산 과정에서 무너진 자신의 이야기, 무너진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윤곽을 무너뜨리는 일의 경이를 포착하기를 작가는 잊지 않는다. 「52 블루」에서 두 개의 윤곽을 허용하자던 작가가 윤곽 없음마저 긍정하는 「태동」은 각별한 울림을 준다.
포르투갈어 사우다지(saudade)는 번역할 수 없는 단어로 악명이 높지만, 나는 순전한 노스탤지어보다 더 수수께끼 같은 감정을 일컫는 이 단어가 항상 좋았다. 사우다지는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가진 적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노스탤지어와 비슷하지만, 사우다지는 가본 적 없는 장소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뜻할 수도 있다. 마셜 할아버지가 가족 없이 살던 브라질에서 자연스레 쓰는 이 단어는 주로 소유나 동반을 나타내는 문법적 구조를 취한다. 사우다지를 가진다, 또는 사우다지와 함께 있다는 식으로. 그리움이 일종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듯이. 그것이 부재의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듯이.(231쪽)
이 책의 제목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는 시인이자 비평가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가 워커 에번스를 두고 한 말(“예술가가 하는 일은 모든 일, 모든 날, 모든 곳에서 적용되어 제 삶을 재촉하고, 해명하고, 강화하고, 확대하며 이를 유려하게 만든다. 에번스가 하는 것처럼, 비명 지르게 한다.”)에서 따온 것이다. 제이미슨의 의도는 분명하다.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는 노스탤지어보다 ‘사우다지’에 가까운 글쓰기를 보여준다. 가진 적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이, 가진 것보다도 그 존재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타인에 관해서 그리고 자신에 관해서 쓸 수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써낸다면, 쓰인 그것은 비로소 비명 지르고 불타오를 것이다.
I 갈망의 글쓰기
52 블루
우리는 다시금 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레이오버 이야기
심 라이프
II 관찰의 글쓰기
저 위 자프나에서
그 어떤 혀로도 말할 수 없다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최대노출
III 거주의 글쓰기
리허설
기나긴 교대
진짜 연기
유령의 딸
실연 박물관
태동